내가 알고 있는"유혹"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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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17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다윗의 기도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면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 는 것이였다
그가 자신의 연약함을 앎에 있어 가장 첫번째로 알아야 할 것이 자신의 한계였다
그 한계는 지식과 지혜 그외 살아가는 사회적인 제반 능력에 관한 한계가 아니라
자신의 년수와 종말 즉 자신의 육체적인 생명의 한계였다
다윗의 그 기도는 사실 내게도 가장 절실한 도전의 기도가 아닐까 싶다
내 수명의 한계를 알게 하사 나도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오늘 바울은 다윗처럼 개인적인 년수과 종말이 아닌
지구상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임할 세상의 년수와 종말에 관하여 내게 말씀을 주신다
그 누가 무엇이라해도 요동하지 마라, 미혹하지 마라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할지라도..........(2절)
바울이 여기서 우리에게서 받았다하는 편지는 오늘날 성경으로 전수되어 오고 있는데
주의 날에 관한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그들 역시 성경을 들먹이며 지구 종말의
년월일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것에 홀낏하는것조차 사실 흔들림이다
나는 종말에 관하여 어떠한가?
12살,
17살,
그 나이에 나는 질병으로 할 수 없이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나를 정리해 본 적이 있었다
어떤 성숙함때문이 아니고
내 몸을 치는 병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종말을 인정한 사람은
지구의 종말을 인정하는 것에 그리 인색하지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
그것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천국이다
그런의미에서 종말은 내 자녀들에게 가장 주고픈 천국의 시작일뿐이다
울 큰 딸 자기는 엄마가 너무 좋단다
다른 엄마들은 공부 공부하는데 엄마는 도무지 공부소리를 안한단다
그래 엄마곁에 살고 싶단다
울 둘째 딸
이번에 엄마 아프다며 일주일간 나와 함께 있으며 자기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단다
집이 너무 좋단다
다 큰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떠나고 싶어한다
허나 그들이 진정 부모를 알면 같이 있고 싶어한다
나는 아직도 예수하고는 긴가민가하는 큰 딸에게
딱 한 마디 해주었다
나는 네가 죽어서 천당에서만 만날 수 있다면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고...........
새삼 나는 완전한 천국의 시작인 종말을 놓고
진정 나는 하늘 아빠와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살기를 소망하는가?
아니 지금 나는 그렇게 아빠와 아들을 마음에 모시고 늘 살아가는가?
유년 시절
사춘기 시절
그시절엔 왜 그리 하나님과 주님을 모시고 사는게 무섭고 불편하고 마냥 두려웠었는지......
꼭 고부지간처럼 살은 것 같다
그러나 청년시절엔 그분에 대한 타는듯한 목마름에
그 거룩한 혁명과 사상으로 잉태된 특수 현장에서 내 모든 순정을 다하여
내 온 젊음을 탕진시켜 본 적도 있었다
그를 만날 수 만 있다면 나는 죄인으로 대변되는 창녀의 소굴도 들어갔던 몸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의인으로 대변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소굴도 들어갔었는가?
그런 질문은 이제 좀 더 기다렸다가 해야 할 것 같다
종말은 여러가지로 모든 것들을 낯설게 만들어준다
새로운 색채로 나와 남편과 아이들과 주변과 주변의 인물들을 보게한다
근데 종말을 놓고 가장 새롭게 다시한번 곰곰 바라보아야 할 분이 계시다
바울은 그분을 일컬어 종말의 때를 붙잡고 계시는 분이라고 내게 말씀해주신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사람
대적자
악한 자가 아무 때나 활동하도록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뒤에서 그들을
일일이 관찰 주목하여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교회 목회자들이나 그외 주님을 사랑하는 동역자들은
주님의 그 사역에 동참하여 바울의 그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늘 그 악한 자들의 활동을 주시 주목 관찰하여 주님의 입기운인 말씀으로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도 있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사람, 대적자 ,악한 자-
이들에게선 하나같이 종말의 악취가 팡팡 풍긴다
그 냄새나는 종말의 뚜껑을 열고 닫음이
주님께 있음을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을
유혹 이란 이름으로 명명하여 지상에 남겨두었는가를 명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직도
내게 유혹 이란 그 언어가 살고 있다면
내 구석 어딘가 진리의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진리의 사랑
하필 왜 진리의 소망이나 진리의 말씀이나 진리의 믿음이라 않고
진리의 사랑이라 했을까?
묵상해본다
그것은 사랑은 사랑인데 진리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아픈 사랑이기에게
어쩔 수 없이 채찍의 사랑이기에
어쩔 수 없이 고통의 사랑이기에 유념하여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이 아닐까 한다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0절)
아프다고 매가 무섭다고 너무 고통스럽다고 진리의 잣대를 거절하면
지금 처한 환경이나 그 어떠한 문제로부터 구원함을 얻지못하여
사단의 역사를 따라 나타나는 환경에 요동하는 내 육체와 영혼만 더 기진할뿐이다
나는 유혹 이란 말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현란한 어휘와 화려한 문장에 유혹당하고 있을까?
존재의 집이라 할 수 있는 언어로 형상화된 한 먹음직스러운 인격에 유혹당할때가 있는가?
나는 가면 갈수록 내 몸의 현기증이 이해가 간다
고도의 비상엔
고도의 유혹이 좇아오고 있다는 것
그래 나는 아찔 아찔한 분초의 시험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연약함 이라는 것을.........
묵상의 글조차
얼마든지 오류와 기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색칠하는 기술에 나는 내 스스로 펜을 던져 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렇게
노력을함에도
나는 끊임없이 그 유혹을 받는다
그래
나는 이 아침-
내 년한과 종말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 년한과 종말의 열고 닫음의 주인되신
주님앞에
다시한번
진정이길
진정이다못해 차라리
그분앞에서 죽어지길 열망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유혹의 전쟁이 끝난 그의 품속에서 영원히 안식하고픈 것이다
허나
울 주님
내가 싸울 싸움을 이미 셋팅해놓으신 것을 볼 때
내게 십자가 군병된 투혼을 주사 감당케하길 빌뿐이다
그리고 연약함으로 인하여
싸우다 넘어질 때
그때마다
주님과 천사들과 수많은 믿음의 대 선배님들의
응원소리에 다시 일어나 싸우길 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