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샘 목사님의 기도하시는 눈물이 그것을 내게 화평한 자의 평안이라 말해주었다
작성자명 [정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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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16
[지나간 큐티 묵상 이지만, 이제 겨우 준비된 마음이라 늦더라도 올립니다. 이해하세요.]
도대체 잠이 오질 않아
침대에 반쯤 누운 채로 눈만 껌뻑 이고 있다가
현실인 듯 다가온 딸 아이를 꼬옥 껴안아 보았다.
꿈인 것이 서러워 꺼억 꺼억 울다가 일어나 앉아
예수님께 편지 쓰는 마음으로 첫 나눔을 올렸다.
기억조차 처절한 기억들
그래서 차라리 죽음을 염원했던 기억들을
하나씩 조금씩 끄집어내어 예수님께 편지로 썼다.
하나씩 벗겨지는 자유로움에 감격하고
미가서 한절 한절에 하루 하루 혼절하고
조카만 같고, 누님만 같은 몇 사람들 앞에서 눈물 삼키고
얼굴도 모르는 사이버 친구들과 따뜻한 온돌 같은 인사를 주고받고
노모와 누님과 찬송 부르며 즐거워하고
매일처럼 전화 해주는 형수를 좋아하고
가끔씩 전화 해주는 조카를 사랑하고
거의 평생 못마땅해하던 목사님이 이리도 귀하고 고마워서
그 말씀 한 마디에 깨어지며 펑펑 울고
나는 그렇게 조금씩 한 걸음씩 살아나고 있었다.
QT 통한 말씀이 너무 달고 너무 오묘하였다.
날 사랑해주는 이들이 사랑스럽기만 하였다.
나만 나만, 내 새끼만 내 새끼만, 기도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진실로 기도하였다.
어떤 이들은 미워지기 시작했다.
절대 가르치지 말라며 가르치는 이들이 가소로워졌다.
한 줌도 안 되는 글재주로 ‘쉐익스피어’ 되어
폼 재는 이들을 둘러치고 싶어졌다.
저 하고 싶은 말은 다하면서도
성경 한 두 줄로 방패 삼는 입들을 꿰매고 싶어졌다.
주님 앞에 우리들은 모두 한 식구네 하면서도
자기 사람들만 토닥이는 손들을 후려치고 싶어졌다.
인생의 안목과 자랑은 헛 껍데기라 하면서도
제 자랑에 풍덩 빠지곤 하는 이들의 껍데기를 훌렁 벗겨버리고 싶어졌다.
이랬다 저랬다 남 눈치 보며 맘 바꾸는 가짜 친구들을 정죄하고 싶어졌다.
실 새 없이 쏟아지는 내 눈물의 정체도 의아해졌다.
성령의 감동인가, 감정의 격화인가?
미워하며 의심하며 올린 나눔은
한 마리 들개 새끼의 표독스러운 앙탈이 되어버렸다.
혼란한 어둠이 낮과 밤 내내, 내 마음을 덮어왔다.
발가락 끝까지 불 붙은 듯한 아픔도 다시 찾아왔다.
서러웠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 걸어온
짧지만 진실했던 묵상의 도로가
끝이 막혀 끊어진 길이 되어
제자리 걸음 걷는 나를 조롱하듯 비웃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다.
창 밖에는 오늘따라 차가운 비가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그래도 아침은 찾아왔다.
옷을 추슬러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 밤에 꽤 내린 비로
하늘이 맑아지고, 높고 파아래져 있었다.
떠있는 구름들마저 몹시 하#50604;다.
제법 차갑게 부는 봄 아침의 바람이
마치 가을날에 흩날리는 신선한 감격 같았다.
지하철에 올랐다.
덜컹거리며 삼성역에 도착할 쯤에 몸을 일으켰다.
문 옆에 비스듬히 서 있는 젊은 미국 친구를 보았다.
4X6 에 빼곡히 적힌 한글을 외우고 있는 젊은이는
눈이 크고 허리가 긴 잘생긴 청년이었다.
“Good mornin’ my friend,”
참으로 오랜만에, 낯 모르는 사람에게 던져보는 아침 인사였다
“”Hey, hey! Are ya talkin’ to me?”
한동안 익숙지 않아왔을 낯선 한국사람의 영어 인사에
흠칫 놀라는 젊은 친구의 얼굴에는
미소가 대뜸 떠올랐다.
언어의 굴곡이 심한 한국말 배우기가 힘들지, 물으니까
“그래도 참 재밌다”고 하였다.
날더러 “영어를 어디서 배우셨냐”고 물었다.
나도 미국서 살다 왔다 하였다.
“미국 어디냐”고 물었다.
시애틀 동부 쪽에 눈꼽 만한 동네라 말해도 모를 거라 하였다.
“나도 워싱턴 주에 있었다”며 깜짝 놀라 했다.
워싱턴 주 어디냐고 물었다.
“스포캔 (Spokane)” 하였다.
거기 안 살아본 사람들은 다들 ‘스포캐인’이라 부른다.
“학교도 거기서 다녔다” 하였다.
화들짝 놀라, 건재가 (Gonzaga)냐 물었다.
“무디 바이블 칼리지 라는 손꾸락만한 신학교”라 했다.
헤이, 나도 거기 잘 알아, 했다.
서울 지하철 속의 한 켠에서,
남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조그만 이웃 동네서 살던
왈라 왈라 (Walla Walla)서 온 한국인 중년 남자와
스포캔서 온 미국인 젊은 청년이
앉아서 서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겐 낯선 언어로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삼 분간의 순간이
이 삼십 분은 족히 된 듯
Take good care of yourself, my buddy,
“Awfully nice to meet you, too. Take care!”
참 좋은 아침의 (good morning) 짧은 만남이었다.
역에서 빠져 나와 휘문학교 쪽으로 걸어가는 거리에는
이 아침엔 달리는 차들마저 뜸했다.
아아, 삼십 년 전에 걸어가던 서울 변두리 같은 고요함이
문득 내 전신을 감싸 안았다.
인구 오만의 동부 워싱턴 시골 마을에 살면서
가끔씩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는 그런 기분이기도 하였다.
밤비로 깨끗해진 서울 하늘과
주일 아침에 한가로이 뚫린 강남 도로가
절묘하게 맞닿아
내 가슴을 휩싸 안았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If the Lord delights in a man s way, he makes his steps firm; though he stumble, he will not fall, for the Lord upholds him with his hand.) 시편 37:23-24”
교회 문전에서
웅성 이는 사람들 속에서 반갑게 대화하시는
목사님이 잠깐 보였다.
지하철 속에서 기뻐하며 대화하던 젊은이와 내가 생각났다.
앞 자리에 얼른 앉아 머리를 잠깐 숙였다.
“오늘도 말씀이 들리게 해주세요,” 기도하였다.
감은 눈 앞에 화안 한 빛이 몰려왔다.
갑자기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찬양 팀의 노래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아아, 훔칠 틈도 없이 쏟아지는 내 눈물의 의미!
“성령께서 주시는 이 눈물은
표독한 들개 새끼의 앙탈을
밤사이 내리던 비처럼 씻어 주시어서
이제 곧 제게 들어 올
높고 파아란 하늘 말씀을
준비시켜 주심이리이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 (The mouth of the righteous man utters wisdom, and his tongue speaks what is just. The law of his God is in his heart; his feet do not slip. The wicked lie in wait for the righteous, seeking their very lives; but the Lord will not leave them in their power or let them be condemned when brought to trial.) 시편 37:30-33”
“나만, 나만 하던 기도는 그만 멈추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진실한 기도 하겠음이여
회 칠 하여 보았으나,
누군들 그리 못 하겠느뇨
미워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진정 진실한 기도인 것을”
눈물 샘 목사님의 기도하시는 눈물이
그것을 내게
화평한 자의 평안이라 말해주었다.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I have seen a wicked and ruthless man flourishing like a green tree in its native soil, Consider the blameless, observe the upright; there is a future for the man of peace. but he soon passed away and was no more; though I looked for him, he could not be found.) 시편 37:3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