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월요일
제목: 어정쩡
고린도전서 15:12-19
요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믿지 않는 고린도 교인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음도 헛것이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예수 전하는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가 되리라 바울은 말하고 있다.
질문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이 땅에서 포기한 것이 무엇인가?
묵상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것이 더 많다. 내 이상에서는 내가 이 땅에서 포기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예수 믿고 손해 본 것이 무엇인가? 오히려 더 얻은 것 뿐이다. 그러니 나는 참 신앙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좋고 즐겁고 재미있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과 교제하며 말씀 가운데 누리며 왔을까 싶다. 나는 오래 참는 것, 인내가 참 부족한 사람이다. 조금만 힘들어도 깨갱~ 팔딱 거리고 뛰쳐나간다. 말씀 가운데 인내하며 죽어보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상급, 그보다 더 즐겁고 재미있는 상급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은 나의 육으로도 나의 영으로도 나의 인생을 걸기에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 내가 어떻게 손쓸 수 없는 사망이라는 죄값을 대신 치루시고 영생을 주시는 거래, 그런 수지맞은 거래를 내가 왜 거절했겠는가? 가장 이기적인 나로서 가장 이타적인 조건을 내건 주님, 그만큼 나를 향한 사랑의 무게가 크시기에 나는 덥석!! 아멘!! 할렐루야!!
지금, 천년 왕국을 누리는 은혜의 선물은 공동체 가운데 속해서 지체들의 고난을 들으며 깨어 있을 수 있는 것, 그것으로 인해 나의 악과 죄를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의 상상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탕감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감사, 감사만 노래하지만 나의 실상에서는 아주 작은 것에도 패악을 떨며 내 것, 나, 나, 나를 외치는 이기심, 죄와 악을 본다. 공동체 속에서 나의 안 된 것 보고 가게 하시는 것, 나의 한계, 나의 죄와 악을 보고 가게 하시는 것이 가장 옳으신 하나님의 세팅이라고 하셨는데....그런 말씀이 들리는 지금의 예배 환경,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의 환경과 상황이 그렇지 않아서 지금의 몰골이나마 유지하는 것이지 공동체의 지체가 겪었던 그 환경과 그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더했을 인생임을 알고 인정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믿음의 진보인지... 나는 안다.
죄 가운데 특히 성적인 부분에 까탈스러움이 유별났던 것 같고 성적인 범죄를 가장 중죄로 취급했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의 경중이 어디있는가? 죄의 삯은 사망! 큰 똥덩이든 똥가루이든... 같은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악한 심정에는 죄에도 등급이 있었다. 용서 할 수 있는 것과 용서 할 수 없는 것,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이 있었다. 그건 나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넘어가지만, 나를 자극하는 감정, 넘기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나의 자율권, 나의 선택, 나에게 허락받지 않고 넘어오는 경계 없는 행동, 존중하지 못하는 행동들에 대한 나의 혐오감은 큰 것 같다. 그건 내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것 같다.
부활의 약속 나의 신앙 고백으로 인해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늘 여름 성경 학교 적용을 했는데... 남편은 이미 떠난 사람이 왜 굳이 와서 도우려고 하는가 하지만, 나의 말씀 적용이 그렇다니까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나의 반응이었다는 확신은 있지만, 다녀와서는 기쁨 보다는 에너지의 소진이 있었다. 그나마 말씀에 대한 반응과 적용을 했다는 것에 뿌듯함은 있었지만, 여전히 시숙 교회는 나를 누르고 있음을 온 몸으로 알고, 여전히 나는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라는 생각에서.... 아마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 그게 뭔지는 정확하지 않다. 좀더 묵상해봐야 한다. 왜? 나의 어떤 부분과 부딪혀서 쇠잔하게 될까?
가끔 오가는 건 내가 견딜 수 있겠지만, 항상 옆에서 함께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나의 한계, 나의 약점을 확실히 봤다. 어머님이나 형님... 하루만 있다 오는 적용이었지만, 어떤 일을 함께 하는 것에 있어 내게 아직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다녀오자마자 온 몸과 마음에 피곤함이 몰려와 그냥 쓰러져 잤다. 온 마음과 몸의 감각들을 세우고 예민하게 에너지를 쓰다가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안 그러면 내가 죽을까 걱정이 되는가? 그렇게 예민하게 곤두서 있으니까 탈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지 그걸 못 만났다. 나의 무엇이 보이기에 그러는 건지....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증상, 전보다는 덜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의 숙제다.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 곳에서 항상 뻥~ 터지는 게 있다. 십일조 생활에 대한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당했다. 언제나 나는 십일조부터 가장 먼저 떼어놨던 것 같았고 그것도 세금 전 월급에서 넉넉하게 올려서 하나님 것을 구별했다. 그 뿐인가 여러 선교단체에도 드리고 있기 때문에 헌금에 있어서는 회개할 것을 찾지 않았던 것 같다. 나 같은 사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미천한 사람이 월급 받을 수 있는 것에 감지덕지, 하나님의 후대하심을 알고 감사, 감사만 하고 왔는데... 희석된 나의 고백이 있었고, 자신에 대해 부풀려 비대해진 해석이었음을 알았다. 그동안 월급 명세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월급 통장에 들어온 실수령 금액을 통해 짐작하여 넉넉하게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렸는데, 또 성과급이나 명절비, 다른 이름으로 들어온 수입에 대해 구제헌금이나 다른 명목으로 드렸던 나의 헌금 생활을 회개한다. 드린 헌금과 받은 것을 일일이 대조해보니 내가 항상 넉넉하게 드리고 있어~라는 나의 판단 기준이 허상이었음을 알았다. 특히, 작년에는 더 했다. 양쪽 교회에 거쳐 있다는 부담감도 약간은 작용했던 것 같다.
부활 신앙으로 이 땅에서 포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점검해서 정확하게 해야 할 게 여기저기 많은 것 같다. 특히, 가급적 명확하게 줄 것과 받을 것을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 엄마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감사하게 받자 하시는데, 나 역시 줄 건 주고 혹시 내게 주는 게 있으시면 받을 때는 감사하게 받는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어정쩡하다보면 관계에 있어 금이 가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건 하나님께 100% 받은 것이지만, 그러나 최소한의 신앙고백으로 하나님 것을 구별해 드리는 분별,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고백, 10개 전부가 다 하나님 것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드림으로 나머지 것에 대한 것 역시 하나님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 다시 점검하고 정확하게 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 관리실 아저씨께 전도해야지 하고 교회 주보를 드리는데, 아~ 어쩌면 그렇게 말주변이 없는지.... 정말 쪽 팔린다. 전도를 그동안 얼마나 안 했으면 그렇게 주저주저 횡설수설... 말머리를 어찌해야 할지도 계산이 안 되고...
“(주보를 드리며) 교회 나가세요? 이 땅에서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짧아요? 지난 번에 억울한 일도 당하셨는데... 겪으셔서 아시지만 이 세상의 일은 억울한 일 투성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마지막 심판이 분명 있는데, 하나님은 말씀대로 아주 정확하세요. (복음 팔찌를 보이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당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주홍같은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되고 대신 죄값을 치루셨으니 이제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저 천국을 이 땅에서 누리게 하시고, 또 죽어서도 영원히 누리게 하셨어요.” 이 얘기를 드리려 했는데... 횡설수설~ 아! 부끄럽다. 관리실 아저씨
“낼 모레 죽을 사람이 뭐~” 하시길래
“그러기에 더 필요하시지요. 꼭 예수님 만나셔야 해요” 그렇게 어정쩡하게 복음을 전했다. 매일 큐티, 매일 전도! 라는 말이 걸렸는데... 횡설수설~ 준비 안 되어, 무섭고 두려워하며 절절 매긴 했지만... 사단에 이긴 싸움 내가 두려워할 게 무언가?라고 머리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입술은 둔하고 손과 발은 게으르다. 물방울이 또르르 구를 날선 검~ 갈고 닦아야겠다. 남편보고 우리 매일 전도하러 나갈까? 했는데... 아직 답이 없다. ^^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말씀 적용으로 성경 학교 도우러 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② 내가 예민하게 곤두서는 이유를 찾게 하시고 묵상의 필요를 보고, 나의 통과하지 못한 연약한 현실을 직면하여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십일조 생활을 돌아보게 하시고 다시 점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④ 매일 전도에 대한 부담감으로 횡설수설이지만 첫 발을 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혜주셔서 준비하여 말씀의 검을 닦게 하소서
2. 부활 신앙으로 이 땅에서 포기한 것이 없음을 보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드릴 것 있는 인생으로 잘 검검하여 순종하며 적용하게 하소서
7월 31일 화요일
제목: 혈기
고린도전서 15: 20- 34
요약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될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속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질문
1. 내가 날마다 죽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묵상
부모로서 한계를 많이 느낀다. 가장 중요한 게 ‘관계’라는 것을 알지만, 때때로 내 안에서 올라오는 혈기... 오늘도 간다는 봉사 활동은 안 가고 영화 보러 간 아들, 내 안의 요동함을 보았다.
날마다 죽어야 하는 것,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그러나 여전히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힘이 빠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죽는 것임에도 죽는 척 하다가 또 살아나고 죽는 척 하다가 또 살아나고.... 부활도 아닌 것이 부활을 경험한 것같이 요란만 떤다. 죽은 적이 없는데 어찌 부활을 경험하겠는가.
나는 십자가에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살아있다. 죽었다가 살아난 신앙 고백을 하는 게 아니다. 여전히 내 혈기가 살아있고, 여전히 내 의가 살아있고 여전히 내 생색이 살아있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EBS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체휼하게 하시고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감정 코칭, 가장 먼저 나에게 사용해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아들들 앞에서 날마다 죽는 적용, 혈기 내지 않는 적용으로 부활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