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죽을 수 있는 이유
(QT본문: 고전 15장 20절 ~ 34절)
2012-07-31. 화요일.
[본문: 고전 15장 20절 ~ 34절]
[관찰]
바울의 부활 논증
1. 역사적 논증 (12)
2. 논리적 논증 (13~19)
3. 신학적 논증 (20~28)
1)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에서 다시 살아,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20)
egrave;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그를 믿는 다른 죽은 자들도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하게 된다.
egrave;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온 것처럼, 죽은 자들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해 온다. (21)
egrave;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22)
2) 부활에는 각각 차례가 있다. (23)
egrave;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23)
egrave;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를 믿었던 성도들 (23)
egrave; 그 다음은 마지막 때인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력과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고, 모든 원수들을 자기 발아래 굴복시켜,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드릴 때까지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24~25)
egrave;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고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모든 것을 그에게 복종하게 되어 결국 하나님만이 만물을 주관하는 분이 되실 것이다. (27, 28)
3) 맨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멸망시켜,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세상이 이루어 진다. (26)
4. 경험적 논증 (29~34)
1) 부활이 없다면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데, 세례를 받는 사실을 볼 때, 부활소망이 있는 것이다. (29)
2)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왜 그렇게 매 순간 위험을 무릎 쓰겠는가? (30)
egrave; 나는 날마다 죽는다. (31)
egrave; 에베소에서 나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맹수와 같이 덤벼드는 반대 세력의 위협을 받았지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싸웠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이렇게 위험을 무릎쓰고 복음을 전한 것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다. (32)
egrave;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목숨인데, 먹고 마시자 하지 않겠는가? (32)
3) 그러므로 거짓 교사(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속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33, 34)
egrave;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기에 부활을 부인하고 방탕한 생활을 독려한다.
[교훈 적용]
바울 사도는 부활이 없어,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서 신학적, 경험적 논증을 통해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1.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음을 넘나드는 위험을 여러 번 경험했다.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을 증거하면서,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어려운 환난을 만나 마침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 속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일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고백하였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증거를 볼 때,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삶을 산다는 것은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기득권, 가치관, 옳고 그름의 판단, 자존심, 자유를 모두 내어 던질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자리에 자기부인, 예수님의 가치관, 예수님이 추구하시는 것, 예수님의 판단기준과 예수님의 자존감으로 채울 수 있었다.
2. 날마다 죽을 수 있는 이유는?
바울이 이렇게 죽음을 넘나드는 위험을 경험하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짐승처럼 덤벼드는 동족 및 이방 대적의 위협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날마다 죽는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부활의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고 그것을 내 것으로 소유할 때 오늘의 고난과 환난은 기쁘게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 후, 30대 초반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였다.
쉽지 않았다. 직장과 가정을 지켜가며, 건강을 지켜가며, 마음을 지켜가며, 외부로부터의 갖은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켜가면서, 하고 싶은 것, 누리며 즐기고 싶은 것, 쉬고 싶은 것, 잠자고 싶은 것 다 참아 가면서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직장과 가정, 그리고 수험생활을 병행하며, 2년이란 기간 동안 이 길을 걸어, 결국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시험에 합격하고 난 이후 변화 될 나의 삶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다.
이 소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새벽에 그렇게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떠지지 않는 눈을 떠가며, 힘들지만 비가와도 우산을 들고 동네를 뜀박질 하며, 조금만 짬이 나면 그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해 가며, 늦은 시간 잠이 오면 허벅지를 꼬집고 머리를 꽝꽝 쥐어 박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의 만남, 모든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의 영광을 위해서도 이렇게 수고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인데,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하는 수고가 뭐가 대수롭겠는가?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이런 걱정 저런 근심을 한다. 어떤 이는 돈 때문에, 어떤 이는 건강 때문에, 또 어떤 이는 명예와 권력 때문에 또 어떤 이는 여자 때문에, 자식 때문에, 공부 때문에 근심걱정을 한다.
언제나 이런 근심걱정이 없는 삶을 살까 한다.
그런데, 더 이상 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 있단다. 성경에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영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이 확신이 내게 있다면, 그 어떤 것을 포기해서라도 이것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3. 그렇다면, 날마다 죽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래서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예수님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한 것이 영생의 소망이 부활 후에만 누릴 수 있는 그런 소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도 그 영생의 소망을 누리며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할렐루야!”가 아니겠는가?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력과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고, 모든 원수들을 자기 발아래 굴복시켜,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드릴 때까지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주님의 통치는 이제 영생을 누리며 살 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으니, 그것이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그래서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영생의 삶이다.
비록 예수님을 통하여 의롭게 되었고 죄에 대하여 죽은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아직은 육신을 입고 사는 것이기에, 육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죄지을 수 있는 의인으로 그렇게 불완전하게 살아가지만, 얼마나 내가 죽느냐에 따라 영생을 누리는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살 수 있는 길이 있으니 그 길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를 위해 바울 사도는,
거짓 선지자에게 속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죄짓지 말고 의를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소망이 있는 자의 삶은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물질, 시간, 능력 등)을 사용하는 것이 다르고, 생각과 말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그 이유는 더 큰 내일의 것을 위해, 오늘 작은 것을 기꺼이 포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조금만 인내하면 내일 세상을 다 준다는데, 오늘을 참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을 인내하며 참아내지 못하는 것은 그 내일이 완전한 내 것이라고 믿지 못하기때문이다.
바울 사도의 권면도 하나님의 가치관이 아닌 가치에 속지 말라는 것이고, 정신차려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말씀을 통하여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께 순종함으로 천국 언어와 생각, 그리고 행동을 하며,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해 오늘 하루도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주님!
감사합니다.
세상의 소망 때문에도 오늘을 포기할 수 있는데, 영원한 영생의 소망이 있는데, 이 삶을 포기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시어, 주님의 자녀로서 다시 한번 저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더욱 주님을 깊이 알게 하시고, 주님의 다스림이 저의 삶 속에 임하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 붙잡아 주시옵소서.
오늘의 삶 또한 영생의 소망으로 기뻐하며,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하루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