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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주일
제목: 자아상
고린도전서 15:1-11
요약
복음,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 말을 굳게 지키고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사도와 여러 제자,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셨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바울에게도 보이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나 바울은 더 많이 수고하지만 그 역시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질문
1. 복음, 그 말씀을 굳게 지키고 믿고 있는가?
2. 만삭되지 못한 바울에게 보이신 예수님, 나에게도 보이셔서 이제 복음의 증인이 되고 있는가?
3.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나는 더 많이 수고하려고 하는가?
묵상
어제 연수가 끝나 집에 돌아오니, 한 아들은 봉사하러 간다고 하다가 배가 아파서 못 갔다고 끙끙 앓는 소리를 하더니 이내 곯아 떨어져 잠을 자고 있고, 한 아들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 간다 오케스트라 간다 나가있다가 돌아와서는 디엠비로 올림픽을 보느라 누워있다. 거실에서부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 여전한 모습으로 현관에 휙 던져진 바이올린... 입이 다물어지고 표정이 굳어졌다. 배가 너무나 고파서 기운이 없어 악다구니를 못 쓸 뿐, 밥이 들어가서 에너지가 공급되자 부글부글 감정에도 에너지를 받아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뭐에 자식에게 바라는 게 많은지... 기대치가 너무나 높다. 내가 바라는 아들, 둘 중에 단 하나라도 아침에 아빠가 부탁한 수학 문제도 좀 풀어놓고 옷가지는 빨래통에는 넣어놓고... 최소한 디엠비는 보지 않고 책을 보면서 엄마~ 배고파!를 외치며 기다리는 아들. 그게 나의 상상속의 아들이다.
생활 예배와 질서가 잡히지 않은 아들의 모습을 직면하려니 내 삶의 결론임에 인정은 되면서도 슬프다. 애#45810;다. 솔직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상황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선택한 게 나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더 슬프다. 이 상황에서 왜 나는 희망을 찾지 못할까? 눈치가 이상했는지 “왜? 왜? 엄마~ ” 깨어있던 큰 아들이 나를 살핀다. 아빠가 사온 만두도 덥석 먹지 못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독서 기록표를 적는다고 컴에 접속해서 자판을 두드린다. 나는 혼자 서러워 울다가 잠이 들었다.
토끼털이 다 빠진 괴물 같은 모습, 무섭고 징그러워 꺼내놓지도 못하고 개수대 같은 통에나 들어갈 너무도 작은 모습, 숨만 할딱거리며 쉬고 있는 그 모습, 아무도 모르게 살짝 죽이고 싶기도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양심에... 너무 추워하는 것 같아 따뜻한 물을 틀어 주는데, 샤워기의 물에도 죽을까 버둥거린다. 추위에 몸을 오들오들 떨다 따뜻한 물에 오금이 펴지면서 몸도 커졌다. 이제 좀 살아난 모습이다. 측은한 생각이 든다. 가련하고 불쌍하다. 물에서 나오자 다시 추위가 느껴지는데, “덮어줄까? ”했더니 아까 있었던 따뜻한 개수대통을 가리킨다. “이제 그 물은 식어서 안 돼. 수건이라도 덮어줄까? 옷을 줄까?” 하니까 “내복~”하며 수줍게 웃는다. 감색 바탕에 흰무늬가 있는 아들 내복을 입혔더니 너무나 좋아하며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돌며 엉덩이춤을 춘다. 이제 따뜻하다. 괴물 같이 흉측하여 바깥에 내보내기도 부끄러운 모습, 혹시 어떤 병이 있어 옮을까 걱정되기도 하다. 그럼에도 용기내어 감싸안았더니 너무나 감사해한다. 사실, 죽이고 싶어하기도 하고 추위에 내팽겨 놨던 몹쓸 사람인 내 앞에서 자기가 입은 내복을 몇 번이나 손으로 쓸면서 좋아한다. 불평 한 마디, 해꼬지 하나 없이 고마워하기만 하는 순수함, 순진함에 감사하고 뭉클하다. 아파트 방송에서는 위험하다고 격리하라고 하지만, 그럴 마음은 없다. 함께 뒹굴며 논다. 그러다 죽으면 천국인데 뭐가 걱정인가.
새벽녘에 잠이 깼다. 꿈이다. 괴물이 나 같기도 하고, 우리 아들 중 한 명 같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나 순진하고 순수한 몸사위, 감사함, 미소... 참 예쁘다. 흉측한 괴물 같아서 건드리고 싶지도 않고 살짝 아무도 모르게 죽이고 싶기도 했는데... 혹시 해꼬지를 할까 두렵기도 했는데... 감격해하고 감사만 한다. 내팽겨쳤던 몹쓸 어미, 죽이고 싶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했던 어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워하며 좋아하는 모습... 그게 우리 아들이다. 내 안의 자아상이기도 하다. 몸을 따뜻하게라도 해줘야겠다 싶은 작은 한 가지의 적용으로 함께 뒹굴며 놀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 토끼털을 하고 있는 모습, 괴물 같은 모습일지라도... 감싸안았더니 무서움과 두려움에서 즐거움과 기쁨, 감사와 감동이 몰려온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바울... 토끼털조차 다 빠져 흉측한 몰골의 괴물 같은 나, 숨만 할딱거리며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도 할 수 없는 나에게 찾아와 예수님이 친히 들려준 복음, 은혜 위에 은혜,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죽을지, 또 지금 죽은 자의 모습인지조차, 그래서 예수님의 필요조차 모르며 지냈던 나에게 오신 예수님은 내 인생의 기적이다. 은혜 중의 가장 큰 은혜이다. 그럼에도 그 몰골이 싫고 무서워서 숨기고 싶고 은밀히 죽이고 싶었던 죄인 중의 죄인이 나다. 오늘 새벽, 실컷 울었다. 어제는 내 연민에 울었고 오늘 새벽에는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울었다.
복음 때문에 하는 수고가 아니라 내 혈기에 내 짜증에 엎어지고 넘어지는 오늘이지만, 그래서 사탄은 너 또 그런다 내게 참소하지만, 이미 나는 이긴 싸움이다. 지금 비록 넘어질지라도 오직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지금도 천국이고 죽어서도 천국이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내가 흉측하고 못 해서 그렇기에 더 할 말 없는 인생, 감사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인생, 그렇기에 실패해도 깨져도 승리이고, 예수님으로 인해 잘 적용하고 순종한다면 그건 역시 더 없는 승리이다. 이제 내 힘이 점점 없어져 가는 육체의 쇠잔함, 그 역시 감사다. 이 수고 역시 내 힘이 아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대놓고 얘기할 수 있게 되니까...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나의 낙망함 가운데 또 패악을 떨다 혼자 처연해 울었지만, 하나님 여전히 감싸안아주시고 용기 주시니 감사합니다.
② 가까운 교회, 새벽을 열어주셔서 하나님과 깊이 만날 수 있는 은밀한 장소를 준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③ 나의 악, 숨은 부끄러움, 나의 자아상을 꿈 가운데 보여주시고 말씀 가운데 해석해주시니 감사합니다.
④ 귀하고 소중한 아들들의 수고함으로 나를 가르치시는 하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 예배 가운데 제게 주시는 말씀 듣게 하시고 나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기도합니다.
3. 전도할 때, 먼저 아들들에게 나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하소서
4. 하나님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공동체에서 섬길 일들을 보고 적용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