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를 사용할 때 고려해야 할 3가지 질문
(QT본문: 고전 14장 13절 ~ 25절)
2012-07-27. 금요일.
[본문: 고전 14장 13절 ~ 25절]
[관찰]
방언 사용과 관련한 바울의 권면
1. 방언하는 자는 통역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13)
2.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영과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라. (15)
egrave;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기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14)
egrave; 만일 영으로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면, 예배에 참석한 불신자(or 초신자)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감사에 “아멘”으로 반응할 수가 없다. (16)
egrave; 하나님께 감사한 것 자체는 잘 한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17)
3. 바울의 소원
egrave; 바울은 자신이 방언을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그 어떤 성도보다 더 많은 방언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러한 은사를 주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고 말한다. (18)
egrave; 그러나 바울은 일만 마디 방언을 하는 것보다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을 더 원한다고 말한다. (19)
4.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어른이 되며, 악에 대해서는 갓난 아이가 되라. (20)
egrave; 이기심이나 분쟁과 같은 일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와 같이 되고, 교회의 덕을 세우고 사랑으로 행하는 일에 있어서는 장성한 사람처럼 생각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
불신자에 대한 예언과 방언의 효과
1.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주신 표적이나, 예언은 믿는 사람들을 위해 주신 것이다. (22)
egrave; 유대인들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른 방언하는 자(앗수르 민족)의 지배를 받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21)
2. 교회에 모여 모두 방언을 하고 있을 때, 불신자가 들어와서 보면, 방언하는 성도를 미쳤다고 할 것이다. (23)
egrave; 통역없이 방언하는 것이 이처럼 헛되다는 것이다.
egrave; 그러므로 남(불신자)이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듣는 자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3.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언하고 있을 때, 불신자(or 초신자)가 들어오면, 그들은 그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속에 숨은 것까지 드러나게 되어, 마침내 하나님을 경배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살아계심을 전파하는 자로 변화시킬 수 있다. (24, 25)
egrave; 결국 예언은 성도들의 믿음을 격려함으로 교회를 세우고, 불신자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훈 적용]
고린도 교회의 은사를 둘러싼 혼란의 종결을 위해, 바울은 모든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 기준이 되며, 그런 측면에서 예언이 방언보다 더 낫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로써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가르침에 따라 은사를 둘러싼 예배의 혼란을 극복하고,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있는 은사를 사모하고, 이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숙된 신앙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대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은사를 사용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3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자신의 마음과 영, 각각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방언을 하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방언하는 교인은 자신의 방언을 통역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그 이유는 방언은 영이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예배에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통역이 없으면, 불신자들 또한 방언으로 드린 감사와 찬양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예배와 달리 개인예배를 드리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기도하는 자신이 큰 유익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예배나 개인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영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만나는 전인격적인 교제를 할 때 비로소 온전해 질 수 있다는 취지로 본문을 생각해 보았다.
이를 묵상에 적용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정확한 이해를 위해 다른 성경이나 주석을 통해
본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했다고 하여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은 아니다.
또 본문을 묵상하고 지식적으로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오늘 적용할 것을 찾아 적용한다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실천해야 할 것을 찾아 적용을 하고 있어도, 이것이 온전해 지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운데 성삼위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여야 한다.
이 부분이 없이도 지성적으로 성경지식을 쌓을 수가 있으며,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없이도 습관적으로 적용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처럼 외식적으로.
그래서 어제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해 보면서, 큐티를 한다고 하면서 외식적인 부분이 없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 본 것이고, 그래서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위해 그렇게 씨름을 하는 것이다.
2. 신앙 공동체에 덕을 세울 수 있는가?
첫번째 질문이 자신의 유익측면이었다면, 두번째 질문은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의 유익측면이다.
경영컨설팅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조직 구성원 한 사람의 최선이 회사 전체의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직원과 회사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의 열심이 회사의 비전이나 방향과는 일치하지 않는데, 자기 생각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한데, 회사의 방향과 맞지를 않으니, 결국 그렇게 하는 본인이나 회사가 동시에 윈윈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공예배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앙공동체에 덕을 세우려면 예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권면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기심이나 자기자랑이 동기가 되어 나타나는 갓난아이와 같은 모든 생각과 언어와 행동을 다 버리고 이타적인 동기, 신앙공동체를 온전히 세우는 것이 동기가 되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을 다짐해 본다.
3. 불신자를 전도할 수 있는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모든 사람이 예언하고 있을 때, 불신자(or 초신자)가 들어오면, 그들은 그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속에 숨은 것까지 드러나게 되어, 마침내 하나님을 경배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살아계심을 전파하는 자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방언은 불신자를 믿도록 자극하는 표징이 될 수는 있지만, 통역이 없이는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인지를 알 수가 없고 또 불신자들에게 미쳤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결국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함인지를 생각해 보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인으로서 무엇이라도 먹을 권리가 있었지만,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 형제를 시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신앙공동체에서 함께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갈 때, 비록 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남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고, 또 불신자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 이를 기꺼이 그치는 행동하는 신앙인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은사를 사용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제가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하고, 공동체나 불신자에게 유익이 되지 않음에도 지금까지의 굳어진 저의 생각과 습관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매일을 말씀붙잡고 살려고 힘을써도 여전한 저의 닦여지지 않은 수많은 더러운 얼룩들이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제 힘으로 할 수 없음을 매일같이 주님께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덧입어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내 속에 더러운 것들, 끊임없이 말씀으로 닦아 거룩하게 하시며, 이를 통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도 주님, 동일하게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며,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복된 하루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