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7.21-40 <의인과 악인의 결국(2)>
작성자명 [주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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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14
요약: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행동 양식과 그들 운명의 결국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복과 저주를 주시는 자(22).
1. 사람의 걸음을 정하심(23a).
1. 여호와께서 사람이 아주 넘어지지 않게 붙드심(24).
1.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28).
1. 의인을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심(33).
1.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자로 땅을 차지하게 하심(34).
1. 악인은 결국 끊어지게 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고 산성이 되심(38-40).
*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1. 본문 속에서 의인이란 결국 선을 행하는 자이고(27), 마음에 둔 하나님의 법을 따라 걷는 자이다(31).
1.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38),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39).
오늘 본문 전체 맥락이 전해주는 것은 결국 의인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잘 되고 악인은 멸망한다는 사실이지만, 현실 세계를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즉각 악인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경우도 있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그 정당한 결말을 못 보는 경우들도 있다.
어쩌면 오늘의 사회, 혹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적극적인 선을 행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적당히 악하게 살거나 대충 타협하면서 살아도 아무 문제없더라는 사고에서 기인할지 모른다. 아니 바르게 살면 손해 보는 것이요, 영리하게 사는 것이 결국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더라는 생각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있다. 결국 하나님은 선과 악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으로”가 너무 표면적 의미로만 강조되다보니 적극적 의지를 드려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한 강조가 약화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믿음으로 다 되었으니 우리가 더 보탤 공로는 없다는 생각에.
구약과 신약이 다를 것이 없다. 언제나 우리 삶의 성결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법도를 따를 것을 요청한다. 그런 자가 의인이다.
그런데 어제 말씀도 그렇거니와 오늘 말씀도 그런 것은, 의인이 악인의 부당함과 적극적인 공격에 대해서 대항하라는 구절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응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의인으로 평안을 얻게 할 뿐이다. 결국 의인, 즉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려는 자는 장래의 결말에 대한 믿음 위에서, 그리고 그 처리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태도로서 지금 주어진 현실 세계를 인내하며 걷는 것이다.
1.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25) - 물론 악인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처리하신다 해도,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은 현실 세계에서 끊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뢰하기 전에 나는 의로운 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느냐,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걷느냐가 중요하다. 내 쪽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조그마한 센터를 경영하면서 비즈니스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유익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의를 행하기 위해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이 고민해야하는 경우들이 다가오리라. 하지만 이것은 내게 좋은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가 살지 못하고 외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 번에 열 걸음을 걷지 못하면 최소한 다섯 걸음이라도 걸어야할지 않을까?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완전한 의를 행할 수 없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을 먼저 시도하라고.
기도: 하나님이시여, 주의 법도를 따라 걷게 하시고, 선택의 순간이 올 때는 불의를 행하느니 차라리 손해를 감수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