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잡아주실 귀여운 손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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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14
2007-03-14 시편 (Psalms) 37:21~37:40 하나님이 잡아주실 귀여운 손
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교만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수치는 넘어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맥스 루케이도의 글처럼
넘어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적절히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처음 읽고 무심히 지나쳤다가 어느 날 다시 음미하면서
세상의 어떤 수신서보다 실용적인 교훈을 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암에서도 안 넘어지고 잘 걷는 사람은 소경이라는 목사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두 발로 서서 걷는 인간은
네발로 걷거나 배를 땅에 대고 기는 동물과 달리
애당초 넘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만드신 이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인데,
하나님이 자신과의 소통을 위해서 허락한 이성과 판단력으로
만드신 이에 대적하는 성품, 즉 교만의 죄를 지으니
동물과 같은 자세를 취하게 하여 자신의 존재를 깨달으라고
하나님 앞에 가장 겸손한 자세로 넘어지게 하시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셨으니 일으키시려 손을 내미시는데
그 손을 선선히 잡는 사람도 있지만, 넘어진 이유를 알지 못해,
또는 넘어진 게 너무 분해 그 손 뿌리치고 혼자 힘으로 일어나보려 하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엎어져 사는 사람도 많다.
매일 넘어지는 사람이 또 넘어지면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전혀 안 넘어질 것 같은 사람이 어느 날 넘어지면 뉴스가 된다.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듯이...
그런데 넘어진 뒤의 행동을 좌우하는 건 교만함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두 손으로 땅을 짚었을 때 수치심을 느끼는 건 인간만의 감정일 텐데
수치심에 더해지는 교만의 무게에 따라 일어나고, 못 일어나고
또는 빨리 일어나고 천천히 일어나고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어제 목장에서,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 떠들썩하게 넘어졌으나
지체의 위로 속에 수치심을 극복하고 벌떡 일어난 형제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 중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진정한 회개와 고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교만을 내놓음으로써 형제들에게
장차 올 환란을 보여주는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는 순수한 마음을 전염시켜
29세부터 67세의 형제들이 자신에게 닥친 환란을 토설하며
자신의 죄를 보고 환란의 근원을 찾음으로써 환란을 감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자유함을 얻어
주님께 부끄러움 없이 손 내밀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손 잡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때
아비의 구원을 통해 은혜를 대물림 받을 믿음의 자손은
하나님이 잡아주실 귀여운 손에 맛난 초콜릿을 가득 쥐고
자신만의 천국을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