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 및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관점
(QT본문: 고전 12장 12절 ~ 31절)
2012-07-24. 화요일.
[본문: 고전 12장 12절 ~ 31절]
[관찰]
한 몸에 있는 다양한 지체 및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관점
1. 몸이 하나지만 많은 지체와 더불어 유기적 연관성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교회도 상호의존성에 의한 유기적인 통일을 이룬다. (12, 14)
2. 그러므로 혈통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주 안에서(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다. (13)
3.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은사에 대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하며, 열등의식을 가지고 주눅들지 않아야 한다. (15~20)
egrave; 손과 눈이 발과 귀에 비해 외견상 비중이 있고 가치있어 보인다고 하여도, 발과 귀가 열등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15~16)
egrave; 몸의 다양한 지체는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17) 따라서 자신이 갖는 독특한 역할을 잘 수행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잘 세워야 한다. (19, 20)
egrave;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한 몸에 여러 지체를 두셨다. 따라서 각 지체는 그 만의 귀중한 역할이 있는 것이다. (18)
4.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은사는 다음과 같은 시각으로 이해야 한다. (21~26)
egrave; 어떤 지체가 다른 지체를 쓸데없다, 필요 없다 할 수 없다. (21)
egrave; 몸 가운데 약해 보이고,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고, 또 별로 아름답지 못한 지체를 더 필요로 하고,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아름답게 꾸민다. (22, 23)
egrave;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찮은 지체를 더 귀하여 여겨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하셔서, 몸 안에 분열이 없이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 나갈 수 있게 하신다. (24, 25)
egrave;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한다. (26)
5. 교회에 주신 직분과 다양한 은사들(27~31)
1)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몸의 지체이다. (27)
2) 교회에 주신 직분과 은사는,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병 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다. (28)
3)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직분과 은사를 가질 수는 없다. (29, 30)
4) 하지만,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31)
[교훈 적용]
한 몸에 있는 다양한 지체 및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관점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이 서로 다르다며 상대가 틀렸다고 할 수 있고, 또 어느 경우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은사를 가진 지체가 열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성령께서 각 성도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셨고, 은사를 통해 주님을 섬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케 하는 것이 은사받은 자의 역할이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형제자매 또한 그리스도께서 핏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 어떤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게 “넌 쓸 데가 없어” 혹은 “넌 필요가 없어”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문제다.
나처럼 보지 못하면, 듣지 못하면, 말하지 못하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면 거의 완벽주의자처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몸살을 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년에 수원의 한 스마트폰 부품회사의 경영컨설팅을 6개월 정도하면서, 회사의 요구가 있어 금년3월까지 부사장직임을 받고 일을 한 적이 있다.
스마트 폰의 급속한 성장 덕에 회사가 제법 그 업계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 인적자원이나 역량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외형이 커지다 보니, 부작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일을 하면서, 체계 없는 업무처리와 해이한 근무기강, 그리고 위계질서를 하나씩 정착시키려다 보니, 따라오는 직원들이 보통 어려웠던게 아닌가 보다.
사장님도 나아가 어린 탓에, 창업공신들과 서로 비슷비슷하다 보니 더 그렇다.
지금껏 그렇게 안 하면서도 일을 하고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니,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하는 나의 경영방식이 저들에게는 영 못마땅했던 것이다.
게다가 안 했던 것을 해야 하니 그 친구들 더 힘든 게다.
지금껏 누구 하나 가르쳐 주지 않고, 또 본적도 없는 것을 이제부터 하나씩 배워가며 해야 하니까 무척이나 답답했던지, 과 부장부터 스트레스를 내 놓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꼼짝을 안하고 솔선수범하며 밀고 나가니,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것이 눈에 보인다.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고 믿고 따라오면 자신의 역량도 한층 레벨 업 되고, 회사에도 더 기여하는 부분이 많아 더 많은 보상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데도, 그 비전이 마음에 담기지 않아, 오늘 내가 준비되기 위한 노력을 기꺼이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난 그런 그들을 한편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되었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일단 인정하고,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애써야 하는데, 그게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니 그 결과 나와의 관계가 좋아질리가 없다.
그래서 나의 완벽주의적 경향이 사람들에게는 힘든 모양이다.
이것을 교회로 옮겨놓으면 동일한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무엇을 해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는 지라 외견상 볼 때는 그 성과가 남다르다.
과거 선교모임에서도 처음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랬고, 다시 주님의 품에 돌아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고 정죄하거나 틀리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안다.
아니 왜 이렇게 밖에 못하지? 저건 아니지 하는 정죄감.
그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못된 습성들…
그래서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나의 완벽주의가 성숙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열심이 아닌, 남을 수용하고 섬기는 열심,
또 남을 경시하는 열심이 아닌, 남을 배려하는 열심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데 한 몫(?)을 담당하리라 다짐해 본다.
주님!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는 열심인데,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는 정죄감과 교만이 내 속에 언제든 꿈틀거릴 수 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을 인정하기 보다는, 나처럼 그렇게 못하는 남을 배려해 주기는커녕 속으로 욕하고, 비난하면서 주님의 몸을 악평하였습니다.
결국 그것이 나에게 욕을 하는 것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어리석었던 지난 날들을 주님 용서하시고, 이제 성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몸의 다양한 지체들이 서로 보완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하찮은 지체를 더 귀하게 여겨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주님 도와 주옵소서.
다른 지체의 아픔과 기쁨을 내 것으로 여기고 오늘 하루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덧입고 그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오니 주님 도와 주옵소서, 붙잡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