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월요일
제목: 건강한 공동체
고린도전서 12:1-11
요약
누구든지 성령의 은사로만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유익을 위함이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함, 영 분별함, 방언 말함. 방언 통역함으로, 한 성령이 행하사 하나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
질문
1. 나는 어디로 끌려 다녔는가?
2. 내가 갖고 싶고 흉내 내고 싶은 은사는 무엇인가?
3. 타고난 재능이 영적 은사로 변화되었는가?
4. 내게 주신 은사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가?
묵상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예수님을 모른 채, 할머니를 따라 거리제도 지내러 다니고 할머니는 해마다 부적을 사서 식구들에게 나눠주고 우리 집 안방 문설주 위에는 항상 부적이 붙여져 있었다. 정월 대보름 직전이었는지, 짚과 밥, 음식을 갖고 가서 마을로 들어오는 어귀 다리 목에서 펴놓은 채 소지라고 얇은 종이를 태워서 위로 올리면서 할머니는 마음의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가지고 간 짚도 함께 태우고 돌아왔다. 할머니랑 친하게 지내는 구드레 할머니는 사주를 보고 손금을 보시는 할머니였다. 그리고 가끔 오셔서 삼재에 속했다느니 액이 꼈다느니 하면서 액땜을 위한 부적을 할머니에게 사게 했다. 또, 장독대에 팥시루떡을 해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소지를 올리고 쌀알을 식구대로 집어서 세어보면서 먹게 했는데, 그 식구에게 씹지 말고 삼키라 전달하는 역할은 나의 역할이었다. 칼춤 추는 무당을 본 적은 없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는 가까운 점집이나 그 비슷한 곳에 가서 액땜하는 처방을 받아 왔던 것 같다. 삼촌같이 지내는 아저씨네가 아기가 없을 때도 할머니는 뭔가 처방을 받아서 아줌마에게 활을 쏘게 했던 것 같다.
내가 학교를 다녔던 공주는 계룡산 자락아래 있어서인지 도인들이나 무속인, 이단 세력이 많았던 곳이다. 그때도 지금도 놀랍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단체가 가장 먼저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예수 믿는 CCC나 UBF의 선교단체가 아닌 이상한 단체에서 나에게 접근했다고 해도 나는 거기에 혹~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적인 은혜고 주권이고 부르심이라는 게 입학하자마자 내게 접촉을 시도한 것은 건강한 선교 단체였다. 그래서 성경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뭔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괜찮아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게 되고 알게 되었다. 뺀질뺀질 하기 싫어라 하는 나를 붙들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느라 애써주신 사라 목자님, 가끔 기억이 난다. 그 분 뿐이랴. 내가 교회에 정착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기 까지 내 주위에 믿는 친구들을 많이 붙여주셨다. 좋은 책, 좋은 테잎, 좋은 강연, 잘도 끌고 다녀주었다. 지금도 일 년에 두 차례는 만나는 ‘마라나타’ 모임은 그때 시작된 모임이다. 청년부를 끌어주셨던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신앙 좋은 선배들, 후배들... 그 시절, 내 청년의 때 함께 하며 좋은 영향력을 끼쳤던 믿음의 선배들을 붙여주신 하나님께 감사, 감사하다.
기도에 대해 갈급했고 내가 믿음이 있는 자라는 확신이 있지 않아 자신 없고 흔들릴 때, 방언의 은사를 통해 믿음에 대한 확증,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흔들리지 않는 표식을 보여주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말씀을 통해 100번도 넘게 들어도 정말 그럴까? 라는 흔들리는 믿음이 있었을 때, 방언의 은사는 확실한 증표가 되어 감격했다. 나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맞군요. 그게 은혜요 은혜입니다. 자격 없는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리고 또 사모하고 사모하며 구한 게 나의 유익만이 아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방언 통역의 은사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거기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는다. ^^ 지금 우리 교회에서 공동체를 통하여 지혜의 말씀 은사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모든 은사를 다 받아 누릴 수는 없지만, 공동체에 붙어 있음으로 인해 다른 이에게 주신 은사를 덤으로 함께 누리는 경험, 공급받고 채움 받는 경험, 정말 귀하고 감사하다.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함께 나눔으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는 은사, 눈에 보이게는 의자 세팅, 방송, 목장에서의 가르침, 각 처소에서의 다양한 섬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적절한 세팅을 본다. 함께 도우며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운 조화, 정말 놀랍고 감사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상대가 보고, 상대가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보고 서로 채워가며 균형 있게 성장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 안에 한 지체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목장예배에서 더 연약한 자를 위한 섬김으로 큐티 나눔의 댓글을 지양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다른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내게는 가장 적절한 처방으로 옳소이다가 된다. 나는 중독, 한 쪽으로 치우쳐서 푹~ 빠지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남자 집사들과의 상호 댓글은 본인들은 안 그럴지 모르지만 연약한 자들의 시험거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아멘~이 나왔다. 특히, 남녀가 함께하는 것에 대한 경계는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살짝 서운함도 있고,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상 교제인데 어떤가 싶은 마음도 들고, 서로가 잘해보자는 격려인데 남녀를 국한하는 것에 대해 자유함이 제한되는 것도 같지만, 브레이크가 필요할 때 아주 적절하게 걸린 것 같아 감사하다. 글월이라는 게, 과장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고,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전달되기도 하고 표현이 미숙해서 오해의 소지도 있는 단점이 있다. 또한 나의 경향상 꼭 필요한 처방이다. 여전히 고멜같이 음란 가운데 있지만, 너무도 감사하고 다행인 것은 고멜과 달리 건강한 공동체에 속해 있어서 바른 처방을 받을 수 있기에 더 큰 음란으로 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고 생각해도 건강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게 가장 큰 감사이다. 내가 공동체에 유익함을 주는 것보다, 내가 공급받는 유익함이 더 크니 감사하면서도 한편 죄송하다.
내가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 나의 숙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복음을 들을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우상 숭배에 끌려다니던 나에게 복음의 귀한 말씀이 전달되고 양육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② 귀한 공동체에 속해서 다양한 성령님의 은사들을 공급받고 경험하고 누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③ 큐티 댓글을 달지 말라는 적절한 처방을 듣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④ 내게 주신 재능과 은사들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주십사 기도하며 오직 공동체를 위해 사용되기를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공동체와 나의 유익을 위해 큐티 댓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3.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지 기도하며 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