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토요일
제목: 길맹
고린도전서 11:2-18
요약
바울이 가르쳐준 유전을 잘 지키고 있다고 칭찬을 받지만, 공적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벗는 문제에 대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면서 창조 질서를 따라 행동하기를 권면한다.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지은 받았음을 말씀하지만, 또 주 안에는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고 남자도 여자에게서 났음을 말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난 창조 질서를 말씀하신다. 마땅히 지켜야 할 규례임을 언급한다.
질문
1. 내가 지켜야 할 유전, 규례, 질서는 무엇인가?
묵상
아주 길치인 나는 어디, 새로운 곳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처음 간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차례 간 곳도 헤매는 건 다반사다. 운전은 정말 잘 아는 곳 아니고는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네비게이션은 정말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나의 생활 반경을 넓혀준 것이다. 네비 나오기 전, 나의 발이 되어준 것은 전철이었음은 물론이다. 어느 역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또 알려주고 혹 잘못되었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서울 나들이에 그나마 용기를 갖게 한 건 전철이있었기 때문이다.
늘상 가는 연수 장소로 가는데 네비를 의지해 갔던 이사람, 중간까지는 네비 없이도 잘 갔다. 그런데 거진 다와서는 뭔가 불안하며 걱정스러웠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야 할 길을 모르고 있다. 이때 나의 든든한 친구 네비를 작동시키는데 아뿔싸! 먹통이다. 수년전에 산 네비, 화요일에 새 것이 올 것이지만, 근래에 작동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젠 아무 반응이 없다. 다만 그래도 안심이 되는 건 집으로 가는 길만 살아서 작동한다.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겠구나. 미아가 되지는 않겠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억울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러 차례 그 주변을 돌아보고 네비를 작동시키고 스마트폰의 네비도 연동되지 않는다. 길치에 기계치에... 막막함. 이제는 자책도 든다. 괴롭다. 괜찮다. 괜찮다. 얼르고 달래며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지만, 이거 너무 하다 싶은 마음에 나를 공격하니 기운도 더 빠진다. 처음 가본 연수 장소도 아니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렇다고 오늘은 사람들한테 묻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 이러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도착할 것 같은 위기감, 이제 훌훌 털고 집으로 쿨하게 가겠다고 마음 먹고 마지막 한 번 더 시도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상하게도 지금껏 안 움직이던 네비가 움직인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길맹인 나는 연수 장소에 도착했다. 후유~^^
이런 나의 단점, 아니 장애를 알고도 아무 소리 안하고 지금까지 잘 데리고 다니는 우리 남편,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는 건 나의 1%의 의로움도 없다. 나의 단점과 장애에 가까운 약점들이 많기 때문에 저절로 순종이 되고 그 질서 아래 들어가진다. 그렇기에 이건 피뿌리는 적용이 될 수 없다. 이런 저런 나의 약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닐진데, 그걸 모두 알고 있는 남편 아래 어찌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으랴. 나의 단점이 많다는 것이 그래서 감사하다. 큰 소리 칠 수 없는 형편, 내세울 수 없는 형편이 된 게 감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내가 낫다 싶으면 내가 더 했다 싶으면 올라오는 생색병, 절대 순종이 안 되는 나의 악! 악~ 소리에 내 죄를 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내가 지켜야 하는 윗질서, 역할에 대한 순종... 하는 척이 아니라 전적인 순종! 하나님 만져주시옵소서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나의 약점, 단점들로 인해서라도 윗질서에 순종하고 있는 척, 순종의 모양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전적인 질서에 대한 순종이 있길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늦게라도 네비가 동작이 되어 연수 장소에 데려다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2. 남편 앞에 창조 질서대로 남편을 위해 창조된 나의 역할에 온전히 충성하게 하소서.
7월 22일
제목: 본질
고린도전서 11:17-34
요약
교회에 생긴 분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행동들에 대해 지적을 받는다. 주의 만찬의 본질,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을 상기시키고, 자기를 살피며 합당하게 먹고 분변하기를 권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생각하여 서로 기다리라 이른다.
질문
1. 나는 만찬의 본질대로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2. 구성원들을 생각하여 배려하고 있는가?
묵상
교회 공동체가 모이는 것은 주님을 기리기 위함이고 그로 인한 유익을 서로에게 끼치기 위함인데 그게 오히려 해로움이 되고 있다. 나를 먼저 살피는 것이 필요함을 말씀하신다.
아들 덕분에 합창을 시작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찬양도 잘 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솔깃하여 기도했던 것,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여전히 음감은 없지만 20 여년 전보다 나는 찬양을 더 잘 부른다. 그리고 찬양 부르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그래서 사랑했던 게 성가대였고 성가대에서의 시간들 역시 은혜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다가 아마추어, 아주 적은 인원이 모여서 하는 합창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어려운 곡을 할 때는 가기 싫어서 연수라는 핑계로 가지 못하는 게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좋아하는 곡, 좀 노래가 되는 곡을 지난 주에 한 번 접하고는 이번 주에는 늦게라도 기필코 참석했다. 테너 전공인 선생님의 목소리도 너무 잘 어울리고 멜로디도 가사도 달콤하다. 헛된 것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고 나를 위한 우상숭배, 음란의 시작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어떤 모임에 가든지 그 모임에 가는 것 역시, 예수를 전하기 위함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됨에도 가사와 멜로디에 취해서, 잘 한다는 칭찬에 취해서 해롱거렸다. 어디서 먹고 마시든, 나의 본질은 예수를 전하는 것이고 나를 살펴 분변하고 공동체의 유익, 예수 안에 하나가 되는 내 삶의 본질을 꼭 기억하겠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내가 할 일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② 우상 숭배와 교만, 음란의 악을 또 발견하고 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교회를 소개하는 주보와 팜플렛을 합창단원에게 전달하겠습니다.
3. 내가 어디에 있든 주님을 그 구성원에게 전달해야 하는 나의 사명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