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하며 사는 인생
(QT본문: 고전 11장 17절 ~ 34절)
2012-07-22. 주일.
[본문: 고전 11장 17절 ~ 34절]
[관찰]
고린도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
1. 교회의 공적 모임이 분쟁으로 인해, 유익이 못되고 오리려 해가 되고 있었다. (17, 18)
egrave;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존재하는 파당으로 인해, 참된 성도가 누구인지 분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9)
2.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분쟁으로 인해, 함께 모여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20)
egrave; 왜냐하면,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지 않고, 각자 자기 것을 먼저 먹어버림으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취했기 때문이다. (21)
바울의 처방
1. 바울은 먼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전한 주님의 성만찬은, 주님에게 받은 것이라고 한다. (23)
2. 그리고 성만찬 규례의 기원과 의의에 대해 다시 가르치고 있다.
1)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그날 밤에, (23)
2) 떡을 떼어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24)
3) 떡을 드신 후에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25)
4) “이 예식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3~25)
5) 성만찬 예식의 의미는,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26)
3. 성만찬 규례의 적용
1) 주님의 떡이나 잔을 함부로 먹지 말라. (27)
egrave; 즉,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도간의 교제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연회처럼 생각하고 응하는 행위는 함부로 하는 행위요 죄다.
egrave; 그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2) 주님의 떡과 잔을 마시기 전에 먼저 자기를 살피라. (28)
egrave;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죄의 회개와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결단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를 살피라는 의미
3) 주님의 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먹고 마시라. (29)
egrave;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로 인해 생겨난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므로, 만일 이를 올바르게 분변하지 못하여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지 못하고,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으로 성찬식에 참여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4. 성만찬에 함부로 참여하여 받게 된 하나님의 징계
1) 주님의 성찬에 함부로 참여하여, 교인 중에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많은 것이다. (30)
2)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살폈다면, 주님의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31)
3) 그러나 이러한 징계는 우리를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미리 징계한 것이다. (32)
5. 결론.
1) 주님의 성만찬을 먹기 위해 모일 때는 서로 기다리라. (33)
2) 배고픈 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은 집에서 식사를 하고, 이렇게 하여 주님의 성찬식이 심판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라 (34)
3) 그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린도 교회에 방문할 때 해결하겠다. (34)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성만찬이 파행으로 치닫게 된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함부로”먹고 마셨다.
성만찬 때문에 고린도 교회 내에 분쟁이 있었다.
바울이 가르쳐 준 대로 성만찬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일에 교회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각자가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교인 중 일부 부유한 교인이 가난한 교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함부로 먹고 마신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함께 나누지 못한 교인이 불평을 하게 되었고, 결국 분쟁의 모습으로, 편당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왜 이들이 이렇게 함부로 행동을 하였을까?
곰곰히 묵상을 하면서, 먼저 이들의 무지 혹은 알고는 있었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성만찬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교인들의 무지 혹은 성도간의 무관심이 교회 내 분쟁을 야기하였으며, 파당을 만들게 하였다.
성만찬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고 성도간에 교제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여느 연회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행동한 것이다.
알고도 이렇게 했다면, 이는 마땅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 30절에서 주님의 성찬에 함부로 참여하여 교인 중에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개중에는 죽은 사람도 많다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난 일들을 해석해 주었다.
2. 자기를 먼저 살피지 않았다.
또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을 먼저 살피지 않았다.
어떤 행사에 참석하려면, 참석하는 행사의 목적과 의의를 정확하게 알아야 미리 준비하고 합당하게 참석할 수가 있다.
성만찬이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주님은 왜 죽으셨는지?
주님은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셨는지?
우리가 앞으로 그 죽으심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를 모르는데, 성만찬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행동이 나올 수가 없다.
주님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죽으셨다.
무지한 군인들의 창칼에 몸이 찢기시고, 물과 피를 다 흘리신 채로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고, 주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대신 치러주신 죄값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하며, 아직도 벗어버리지 못한 나의 죄를 애통해 하며, 주님께 회개하는 자리로 나아가며,
이제는 더 이상 죄짓지 않고, 새 생명 얻은 이 몸으로 주님의 은혜를 갚으며 살리라 하며, 주님께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런 내 모습을 살피지 못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니, 주님의 임재의 모습이 나타나지가 않는 것이다.
3. 교회 공동체가 주님의 몸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또 교인들은 주님이 누구를 위해 죽어주셨는지를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주님은, 나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다른 교인들을 위해서도 대신
죽어주셨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형제자매로 묶어주시고, 한 몸 되게 하셨다.
그러니까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며, 한 아버지와 한 주를 둔 형제자매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내 것으로, 먹을 생각으로 가득하니, 이기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남을 생각하겠는가? 내가 배고픈데
주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떡 한 조각, 포도주 한 모금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나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분쟁이 나고 편당이 난 것이다.
성찬의 목적과 의의를 생각하며 나를 충분히 돌아보며 참석하지 못하고, 또 교회공동체의 지체들이 누구인지 그 본질을 놓쳐 성만찬을 파행으로 치닫게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이요 하며, 기도해야 할 것을 적용해 본다.
다 내 이야기지 남 이야기 아니다.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전해야 할 복음을 내 마음에, 내 입술에 담고 살 것을 다짐해 본다.
공동체 식구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기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서로 중보하며 주님께서 가라 하신 이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 본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성만찬에 대해 다시금 깊이 묵상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저를 위하여 죽어주셨는데, 저는 그 죽으심을 깊이 생각하며 살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이 있었습니다.
주님,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전 조금만 몸이 아파도, 죽겠다고 엄살을 부리는데, 주님은 저를 위해, 저의 죄값을 위해
온갖 조롱을 다 받으시고, 채찍을 맞으시며,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창과 칼에 찔려, 물과 피를 다 흘려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주셨는데,
주님의 그 크신,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에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런 주님이신데, 제 멋대로 살고 제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살았던 못난 자식입니다.
주님, 이미 저를 용서하셨지만, 살면서 주님께 옳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지은 죄에 대해 끊임없이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 더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며,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모습을 이루며 살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 가운데 주님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주님의 기쁨이 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