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금요일
제목: 명분
고린도 전서 10:23-11:1
요약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지만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약한 자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구원을 얻게 하라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다.
질문
1. 남의 유익을 위해 내가 절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행해야 할 일과 삼가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묵상
친목회 연수로 모두 1박 2일로 가는데, 나는 토요일 연수를 핑계로 그 먼 곳을 갈 수 없는 게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럴듯한 핑계, 사실 6시간은 빠져도 이수가 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먼 곳을 결정한 논의 과정에도 내 마음에는 못마땅함이 있었다. 민주적인 논의 과정을 사랑하는데, 거의 일방적인 위로부터의 결정 이런 별 것 아닌 것에 마음이 쓰이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나를 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신경 쓰였다. 돌려 생각하고 의도와 중심을 이해하자고 보니까 그런 불편감은 사라졌고 그 입장을 충분히 납득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작은 성과다. 그렇지만 내가 그 자리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나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명분도 있지 않은가.
간식 준비와 가서 써야 할 돈, 상품비를 지출하고 포장하고,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회비의 일부를 돌려주고, 가서 묵는 각 방마다 간식비를 따로 챙겨서 넣어주고.. 그런 과정이 기뻤다. 그러나 가장 기쁜 것은 내가 갈 수 없는 명분이 분명하다는 사실에 희열감을 느꼈다. 야호~ 나는 거기에 안 가도 돼!! 그 더위에 복잡함... 또 가게 되면 거기서 소소하게 챙겨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시작은 절차와 먼 거리였지만, 그 속에 보니까 가서 내가 해야 할 만만치 않은 일들, 그것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우아하게 버스에 타시는 분들을 배웅하고 잘 가시라고 인사하고 그래도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내 마음에 드는 약간의 섭섭함과 서운함도 표현했지만.... 출발하는 버스의 뒷꽁지가 보이자 내 마음 99%의 시원함, 숙제를 끝냈을 때의 통쾌함이 밀려와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남은 건, 가지 않은 사람끼리 점심밥만 챙겨 먹으면 끝!~
그런데,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조퇴를 할 걸 그랬다고 하는 한 사람이 마음에 걸렸다. 친목회에 가지 않는 이유 뿐 아니라 평소에도 공동체에 협조적이지 않고 자신의 유익이 가장 먼저인 것 같은 태도의 동료, 게다가 교회에 다닌다. 나는 그가 교회에 다니는 것도 내심 마음에 안 들었다. 왜 저렇게 할까~ 동료들의 입방아 오르내리는 것도 싫었고 그러면서도 점심 시간에 길게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믿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모르니 저럴 수밖에 없겠지 하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더할 텐데... 혼자 있음에도 그 큰 공간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트는 것도 싫고.... 근데 오늘은 “욕 먹고 말지” 하면서 이미 관리자는 떠나갔는데 조퇴를 달고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계속 “욕 많이 먹겠지요~”그 말을 계속 되뇌인다. 비슷한 또래, 알 만큼 알 사람이... 나는 얼굴은 이미 굳어져 있을 것 같지만, 할 말이 없다. “나한테 물을 건 아닌 것 같고 알아서 하셔야지요. ”그리고도 한동안 내 속에서는 불편감이 요동했다. 생각하면 살짝 표시 안 나게 도망 갈 수도 있을 걸, 그래도 뒷북 같지만, 절차를 밟으려고 하는 선한 양심의 그의 장점보다는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그 행동이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않는 태도라 생각하는 나의 편협함에서 오는 편견에서 나온 기준에 못미치는 그의 단점 때문에 오는 요동함이었다. 내가 이해할 만한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편할 거라면 믿음의 형제라 생각해서 조언이든지 내 심중을 말해보던지, 아니면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던지... 아~ 나의 미성숙함이 드러나는 단상이다.
나는 나의 죄가 너무도 큰 악한 사람임은 늘 고백했지만, 예수님 말씀을 너무도 사랑하고 사모한다는 나의 의가 가득한 교만함이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말씀이 들리지 않아 죽을 것 같이 답답하고 갈급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2일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고, 건강한 공동체 가운데에 묶여 있으면서 친히 말씀해주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나고 있다. 나의 악과 가증, 음란함이 드러나게 하는 말씀 잔치, 천국 잔치에 너무도 시원하고 행복하다.나의 싸움이 말씀대로 적용 못하는 나의 악에 대한 고민과 울부짖음,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이 너무도 귀하다. 하나님이 나를 후대하여주신 은혜 가운데 하나가 우리들 교회로의 인도하심이다.
지금도 여전히 내 것보다는 상대의 것들이 더 잘 보이지만, 말씀 속에 비춰서 나를 쳐 복종하는 육의 싸움을 하고 있다. 나의 잣대로 판단하는 악을 그치고 사람을 품고 가는 것, 그것이 내게 필요하다. 나의 유익에서 이타적인 적용,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그 안에서 합리화하는 나의 악을 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가운데 더 넓어지는 적용이 필요하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내가 갖고 있는 잣대와 명분만을 내세웠던 나를 보게 하시고 남의 유익을 위해 약한 자의 양심을 위해 이타적으로 품어야 함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을 위해 더 넓어지는 적용, 넉넉함을 베푸는 적용을 해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그리스도를 본받는 바울을 만나게 하시고 또 건강한 말씀의 공동체에 속해 적용점을 잘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2. 예수님을 알고 있는 믿음의 동료를 품지 못한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3.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도 사건을 보고 해석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며 나눌 수 있는 역량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