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잔, 겸상은 이제 그만! Stop!
(QT본문: 고전 10장 14절 ~ 22절)
2012-07-19. 목요일.
[본문: 고전 10장 14절 ~ 22절]
[관찰]
고린도 교인을 향한 바울의 충고
1.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4)
2. 내가 하는 말이 이치에 맞는지를 스스로 판단하라. (15)
egrave; 즉, 고린도 교인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으며 우상에 제물로 바친 음식을 먹고(8:7),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판단(분별)하라는 의미
3. 교제의 대상을 분명히 하여, 주님의 노여움을 피하라. (22)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해야 하는 이유
1.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의 잔과 그리스도의 몸인 한 떡에 함께 참여하는 한 몸 된 자이기 때문이다. (16, 17)
egrave; 이스라엘의 제사에서 희생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다. (18)
2. 비록 우상이나 우상제물이 아무것도 아니나,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므로,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자다. (19, 20)
3. 주님의 잔을 마시고 성찬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귀신의 잔을 마시고 귀신의 만찬에 참여할 수는 없다. (21)
[교훈 적용]
고린도 교회에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우상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 한 분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신이므로, 우상제물을 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아가면서까지 우상제물을 먹는 교인들도 있었다.
바울도 우상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귀신이 그 우상을 통해서 역사하는 점에 있다.
귀신은 사람들을 속여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영향을 행사하기 때문에, 우상숭배자들은 귀신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우상에 제사에 참여하여 우상제물을 먹고 마시는 것은 자신을 귀신의 영향력아래 두고 귀신과 교제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바울은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것이 귀신과 교제하는 자라고 하며, 이러한 행위를 도망치듯 피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귀신과 교제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여 내 중심으로 마음껏 살아가는 것 또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다.
돈을 쫓고, 음행을 행하며,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고, 세속적 문화와 가치관을 수용하는 것 또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자리를 대신한다면 그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95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가치관이 공존하는 가운데 살다 보니, 묻자와 가로되의 삶을 놓치는 순간, 그러니까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욕심,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실행한 결과, 그 동안 쌓아왔던 재물이 한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 경험을 하였다.
지금 같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테지만, 그 당시는 투자할 회사에 대한 요모 모조를 따져보고, 투자할 범위를 생각해 보고, 투자 시점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눈꺼플에, 정신줄에 뭐가 씌었는지, 그냥 엄청나게 잘 될 것 같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강남에 가지고 있던 아파트 두 채를 담보로 돈을 있는 데로 다 끌어 모으고, 신용으로 돈을 빌리고, 지인들의 돈을 끌어모으고, 가지고 있던 예금에, 회계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버는 돈 등, 하여간 있는 돈이란 돈은 모두 다 끌어들여 2년여를 투자한 결과 완전히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결과는 부도였다.
그 일을 당하고 보니, 정말이지 살 자신이 없었다. 사업에 망한 사람이 왜 죽는지 정말 이해가 되었다.
그 후 자살이란 생각을 하며, 2년여를 보냈으니, 지옥이 그런 지옥이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압박 속에서 살았다.
이렇게 돈이 우상이 되어 산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엄청난 영적,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고난과 고통을 받았다.
그 후 미국에서 엔론 월드컴 회계부정사건으로, 국내에도 2006년도에 상장사에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게 되면서, 그 부분에 대한 컨설팅을 하며 재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재기를 하니까, 이제는 세상으로 갔던 것이다.
재기를 하면서, 기업체와 컨설팅을 해야 하니까, 접대를 해야 하고, 술을 마시고, 뭐 이렇게 살다보니까, 세상에 맛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
그렇게 잘 되던 컨설팅이 이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제도가 바뀌면서 하던 일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의 경영컨설팅을 하던 부분도 점점 없어지고, 물질 고난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술에 의존하며 살 던 중, 우연한 기회에 우리들 교회 목자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금년 5월에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한번 겪기도 힘든 고난을 두 번씩이나 겪으면서, 이것이 해석이 안되어 방황 그 자체의 삶을 살았다.
이제는 합당한 고난이라고 해석이 되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씀 붙잡고 살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고통의,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 때 선교모임의 지역대표까지 했던 사람이 돈이 우상이 되어 세상 사람과 별반 차이없이 살았던 내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어제의 신앙이 오늘의 신앙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는다.
오늘 하루, 그러니까 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매일 주님께 공급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묻자와 가로되의 인생을 사는 것만이 복되고 복되다 하는 것을 이제는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으니, 헬렐루야를 외치며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
기업체 컨설팅을 하면서 변화와 혁신이란 주제를 다룰 때 자주 사용했던 예화가 있는데, 개구리 예화다.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고, 밑에서 서서히 불을 때우면, 개구리는 따뜻하다고 느끼면서, 자기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 용기에서 뛰쳐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결국에는 그 용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예화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처음엔 한 번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러다 보니 그것이 재미있고 즐겁고, 이러다 보니 또 하게 되고, 그 결국이 죽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을 겸하여 살고 있는 이런 모습으로는 결국 하나님의 회초리를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오늘 사도 바울은,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며 섬겨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피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을 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하나님과 세상을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묻자와 가로되 하며, 주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살 때 매일의 삶이 할렐루야를 외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이 삶을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붙잡고 가리라 다짐해 본다.
주님!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의 유혹 앞에 흔들리기도 하는 저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여전이 부족한 제 모습을 이렇게 확인하게 될 때마다 주님이 없으면 어찌 이 삶을 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갈 때, 어제의 신앙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저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날마다 말씀 붙잡고, 주님께 간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 주신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그 어떤 유혹 앞에서도 나를 붙잡고 계시는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 오늘도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