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유를 가진 자유인이 되는 원리
(QT본문: 고전 9장 19절 ~ 27절)
2012-07-17. 화요일.
[본문: 고전 9장 19절 ~ 27절]
복음전파(전도)을 위한 바울의 권리 포기
1.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바울은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 (19)
2.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바울은 유대인과 같이, 율법아래 있는 자 같이, 율법 없는 자와 같이, 약한 자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 (20~22)
3. 바울은 자신이 소유한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환경에 자신을 순응시켜 전도하는데 장애가 없게 하였다. (23)
천국상급을 받는 조건
1. 경주에서 우승하여 상을 얻겠다는 목표로 달음질하라. (24)
2.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하라. (25)
3.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듯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달음질하라. (26)
4. 분명한 대적과 싸우라. (26)
egrave; 쓸데없는 일에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하라는 의미
5.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 몸을 쳐 굴복시키라. (27)
egrave;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사역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적 성장과 성숙은 소홀히 하여, 상을 얻을 자격을 상실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
[교훈 적용]
본문에 기록된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참 자유를 가진 진정한 자유인은
자신의 자유를 자기를 위해 사용하기를 포기하고, 남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사용하는 자이며,
자신의 자유가 더 가치롭게 사용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구속할 수 있는 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바울이 이렇듯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천국상급에 대한 확신과 소망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소망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목표를 가지고,
모든 일에 절제하며,
방향을 잃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전도와 양육, 그에 따른 모든 행동)
자신의 영적성장과 성숙을 위한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성도들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신의 뜻과 야망을 이루는 데 자신의 자유를 사용했다.
그 결과 그들은 교회 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성도들과 다투며, 어떻게든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들의 자유는 시기, 갈등, 다툼, 분쟁, 분열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뜻과 야망을 다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다 드렸다.
그래서 바울의 자유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듯, 어떤 이는 자기 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여 육신의 열매를 맺고,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니,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바울은 천국소망에 대한 분명한 확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든 그 소망을 갖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그들의 종이 될 수 있었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에 맞게, 율법주의자들에게는 그들에게 맞게, 또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또 양심으로 호소하며,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 있는 자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복음을 전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데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였다.
바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든 나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는 가운데,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전하고, 아니면 포기했던 과거의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바울의 이러한 삶의 근간에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이 사랑이 없이 이렇게 헌신할 수는 없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애통한 심정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게 하였고,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까지 낮아지게 하였다.
내 안에 가득한 내 중심, 내 뜻, 내 교만, 내 열심, 내 자랑, 내 사랑이
하나님 중심, 하나님 뜻, 하나님 열심, 하나님 자랑, 하나님 사랑으로 바뀌어 져야만 그것이 가능함을 고백하게 된다.
이를 위해 바울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모든 일에 절제하며, 방향을 잃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며(전도와 양육, 그에 따른 모든 행동), 자신의 영적성장과 성숙을 위한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더 큰 자유를 위해 기꺼이 구속하라는 권면이다.
어제는 내가 회계사가 되기 전에 함께 근무했던 회사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전에도 한 번 정도 전화가 왔었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자신은 현재 국내 모 회사의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현재 100억 정도의 자금 유치를 하려는데, 그 일을 해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일을 진행하기 위해 자신이 근무하는 상해 현지 투자자문회사를 통해 견적을 받았는데, 상당한 금액을 요구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회장님이 자신더러 여기 저기 알아봐서 견적을 받고 진행을 할 수 있도록 지시를 했던 모양이다.
일이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이며, 기간은 어느 정도가 소요될 것이며, 비용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등 여러 이야기를 하고는 필요한 자료를 메일로 받고, 검토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만일 내가 중국에 가서 이것 저것을 조사하고 리포트를 작성하고 업무를 진행하면서, 그렇게 외지에 나가 있으면, 지금처럼 다시 회복된 신앙을 유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왔던 사장님들이야, 오히려 전도할 수 있는 약재료가 되지만, 이것은 새로운 거래가 형성되는 것이고, 또 잘 풀어야 하는 것이고, 게다가 그 친구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친구인데, 모처럼 만났다고 하여, 그것도 멀리 외지에서, 아무도 안보는 데서, 일 좀 잘해보자고 한 잔 하자고, 거기에 회장님까지 동석해서 잘 해보자고,,,모 이렇게 하면 다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아침에는 지난 번 우리를 교회에 오기 하루 전날 그렇게 취할 때까지 한잔했던 거래처 사장님이 요즘 술 끊으시고, 그렇게 교회 열심히 다니신다면서요 하면서, 자신은 아직도 그렇지를 못하다며 부끄러운 듯 전화를 하셨는데,
오후에는 또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전화를 받고는, 정말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늘 깨어 정신을 차리고, 매 순간 순간 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의지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고 현실과 타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인으로부터 첫 번째 전화가 왔을 때는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 신앙을 회복한지가 2달여 되는데, “일이 성사되어도 걱정이다” 이런 이야기를 웃으며 했는데, 두 번째 전화가 오고, 자료가 왔다 갔다 거리고, 자료를 검토하고, 이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또 드는 것이다.
그 동안 돈을 쫓아 살다 보니, 가리지 않고 이 일, 저 일하면서, 세상과 타협하며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다 있는 재산 다 잃어버리는 고난까지 받은 나다.
합당한 결론이다.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내가 준비되기만 하면, 언제든 다시 채워주실 주님이신데, 눈앞의 이익에 다시 찾은 나의 신앙을 또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호용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모든 일에 절제하며, 방향을 잃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며(전도와 양육, 그에 따른 모든 행동), 너의 영적성장과 성숙을 위한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말라 말씀하신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 자신의 신앙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제게 주신 자유로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이시며,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주님이신데,
과거의 제 모습은 제 힘과 의지로 가득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주님께 돌아와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살다 보니, 작은 것 하나도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게 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봅니다.
모든 일에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늘 깨어 귀 기울이게 하시며, 그 음성을 쫓아 이 땅을 살면서,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주님 힘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복음을 위해 기꺼이 포기하고, 또 이 자유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해 자신을 구속하는 이 모습을 본받는 오늘 하루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붙잡아 주시옵소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