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9 : 1-18.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
내가 주 예수님을 뵙지 못했나?
.....................?
..........?
....................?
.....................?
..............................?
..........................?
........................................?
쏟아지는 질문을 답할 수 있는 고린도인들이 있었을까?
답을 듣자는 질문이 아니라 깨우치자는 질문.
상식적으로 우리가 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을 구하지않는 이유는 사도 바울에게
오직 복음, 주 예수 전파. 그 한가지 이유로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않는 것.
: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누군가 내게서 이 자랑(자부심)을 앗아간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
15절을 읽으며 꼭 ~분 같다!고 적었다, 연필 작은
글씨로. .....(who?....)
바울 사도 속에서 뿜어 나오는 이 말씀은 늘 그 안에 출렁대는 예수님 사상이니
줄곧 터져 나와도 누가 쉬 답할 수 있나.
서로 알고 있는 상식과 율법의 경계 내에서사도는 가르치고있다
예수님이 복음 가르치는 자가 복음으로 생활할 것을 명하신 것은 당연히 그 보장을 하심인데
그마저 Not !
생각 --- 사역자들의 필요를 늘 돌아볼 책임이 내게, 성도에게 있단 것을 기억하자고 생각했다.
장로님들 몫이니 사려한 적 없어 막연했지만 .
멍하고, 둔탁하고, 일상사를 그 삶의 염려에 엎드려 구하는 일,
카타콤의 긴 시간 똑같은 그 지겨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 믿음이라셨다.
사도 바울은 그 지겨운 감옥과 발이 닳을 법한 선교 순례에도 그의 언어는 생생한 찬양이다.
9장을 낭독했다면 오늘 나도 살아있었을 텐데..........
남편 직장이 이미 오픈 된 상태인 줄만 알았는데 수첩을 보니 "개원 준비 중" 이란 기록에 아이구~!엎드렀다.
아마 옛 기억이 다시...염려 안하겠다! 카타콤의 200년을 이미 예방 받았고.
이 밤 늦었지만 영문의 인토네이션으로 바울 사도의 목소리를 들려주리라 ,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