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견해 자랑말자, 형제실족 빌미된다.
(QT본문: 고전 8장 1절 ~ 13절)
2012-07-15. 주일.
[본문: 고전 8장 1절 ~ 13절]
[관찰]
우상제물과 관련하여 고린도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2가지 현상
1. 우상제물은 먹어도 된다는 입장과 그 근거
1) 이 세상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안 계시다. (4)
egrave; 하나님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하신 신이므로, 사람이 만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2) 비록 하늘과 땅에 많은 신과 주가 있다고 하나, 믿는 성도들에게는 한 분의 하나님 아버지와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실 뿐이다. (5, 6)
egrave; 그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는 그 분을 위해서 존재하며, (6)
egrave; 또한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분이시다. (6)
2. 우상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그 근거
1) 우상에 대한 습관이 남아있어서,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이 우상에 바쳐진 음식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약해지고 더럽혀졌다. (7)
바울의 문제제기
1.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3)
2. 음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먹지 않는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고, 먹는 다고 해서 나을 것도 없다. (8)
egrave; 그러므로 우상제물을 먹으라 말라 주장할 필요가 있겠는가?
3. 지식이 있다는 성도가 우상의 신당에 앉아 우상제물을 먹는 것을 믿음이 약한 사람이 본다면, 그 또한 용기를 내어 우상의 제물을 먹겠지만, 그 지식 때문에 믿음이 약한 지체들이 망하게 되는 것을 모르는가? (10, 11)
바울의 처방
1. 하나님께서도 그를 알아 주시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3)
egrave; 하나님은, 지식으로 교만한 사람이 아닌,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사람을 알아 주신다. (1)
egrave; 하나님은 자만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알아 주신다. (2) ->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면서,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에 빠진 자들을 하나님은 “도대체 네가 누구인지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신다.
2. 모든 성도가 그런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거리끼지 않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유함이 믿음이 약한 지체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9)
3_1.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지체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 (11)
3_2. 믿음이 강한 성도가 이와 같이 믿음이 약한 지체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12)
3_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내 형제를 죄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다시는 우상제물을 먹지 않겠다. (13)
[교훈 적용]
2000년대 초반 직장인 선교모임의 강남지역 모임대표를 할 때였다.
각종 선교단체(네비게이토, ccc등)에서 사역을 주도하시던 분들이 이 모임을 결성하고, 직장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를 제1의 과제로 하여, 정말 뜨겁게 제자삼는 사역을 진행하였던 모임인지라, 모임의 성격이 주로 전도하고, 양육하고, 지역모임을 개척하는 등 주로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95년 8월경부터 교회를 몇 번 다녔는데, 궁금한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고 하여, 당시 다니던 직장 동료였던 친구에게 “어디 성경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느냐”고 물어, 그 친구의 도움으로 직장인 선교모임에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난생 처음으로 모임을 갔는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뭐 이렇게 손을 벌리고 축복을 하는데,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그 눈물 참고, 닦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 동안 부모님 없이 동생들하고 살아오면서, 오직 내 힘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살다보니, 뒤 돌아볼 틈도 없이, 쉴 틈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아왔고, 그러면서, 직장 다니면서 결혼하고, 그 후 어떤 계기가 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여, 회계사까지 되었으니, 참으로 인생여정이 무미건조하고, 황량했었다. 정말 눈코 뜰새없이 성공을 위해서 한 걸음도 헛걸음을 하지 않는 그런 인생을 살았었다.
얼마나 냉정하고 철저하게 살아왔는지, 바늘 하나 들어갈 그런 틈이 없는 빈틈없는 사람이 나라고 동생들이 평가할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생판 모르는 모임에 갔는데, 그렇게 사랑, 사랑, 이런 단어들을 써가며 품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나도 모르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어떤 뜨거운 것이 내 마음으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직장인 선교모임엘 나가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의 찬양을 인도하는 형제가 10월 2일, 3일 시간이 어떠냐고 그러길래, 뭐 괜찮다고 하니까, 좋은 모임이 있는데, 한번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하여, 그러마 하고 갔는데, 그곳이 ccc부암동 훈련원이었다.
1박2일을 있으면서, 이런 저런 세미나에 참여해보고 하면서, 기도회 시간이었는데, 참여한 사람들이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고 기도를 하는데, 도대체 이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안에 뭐가 있긴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한번 이 실체를 알아보리라 하고는, 95년 10월 4일부터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부터 나의 신앙생활이 출발이 된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그곳에서 설교도 듣고, 찬양도 배우고, 이러면서 기도도 하였다.
이러기를 몇 개월이 지났는데, 몸은 피곤한데, 뭐 뜨겁게 와 닿은 것이 없었다,
신앙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주님께서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는데, 과거에 지은 죄가 떠오르면서 회개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엉엉 울면서 회개를 하고는,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새벽기도를 갈 때마다 기쁨이 넘치고 찬양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얼마나 감격에 감격 속에 살았는지 모르겠다.
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난생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살면서 받았던 친척들로부터의 냉대, 박대, 서러움, 또 부모님 없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아픔, 이런 것들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고 사랑으로 채워져 가는 내 가슴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체험하며 살다 보니, 매일같이 보는 말씀이 얼마나 꿀송이처럼 달던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직장인 선교 모임에도 열심히 나가고 이러다가 선교 모임의 강남지역 대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모임 홈페이지에 올린 QT일지에 대해 어떤 지체들이 문제제기를 하였던가 보다. 나에게 직접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 모임의 리더 중 한 분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김형제님이 QT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QT글을 홈페이지에 올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QT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체들이 내 글을 보고는 시험에 든다는 것이 QT를 올리지 말라는 이유였다. 자신도 그렇게는 못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핵심 순장 몇몇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들도 어이없어 하면서, 참으로 별일이 다 있다 한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으니, 게의치 말고 계속 하였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준다.
나는 받은 은혜를 글로 기록하여, 지체들과 나누며, 도전하는 것인데, 그것을 받지 못하는 지체들은 오히려 나를 시기하고…
참으로 말하기가 그렇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정말 그 당시에 QT를 하고, 그것을 글로 써서 홈페이지에 올린 일이 과연 지체들에게 시험을 주었던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은혜를 나누려는 데도 이런 갈등의 요소가 있는데, 은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에 있어서는
얼마나 갈등요소가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앙을 하면서도, 과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경험, 가치관, 행동들이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부딪침으로, 거침돌로 작용을 할 수가 있다.
거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교만과 자랑이 한 몫을 한다.
고린도 교회에 지식이 많은, 어찌보면 성숙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는 지체들이, 자신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근간으로, 우상제물이 아무 것도 아니라 하며 먹는 것 자체가 사실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연약한 지체에게 시험을 주고, 양심에 가책을 받게 하는데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죄”라고 선포한다.
흔히 내가 저지른 잘못된 말이나 행동, 교만, 혹은 그릇된 생각 등이 죄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도 바울은 지체간의 반목을 통해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형제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 또한 죄라 선포하면서, 사랑이 없는 지식을 버리고, 사랑으로 덕을 세울 것을 권면하면서, 자신은 형제를 죄에 빠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평생 우상제물을 먹지 않겠다며 지체들을 도전한다.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어떤 적용을 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옳다는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하지만, 상대가 그 옳음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이 설사 옳다 하더라도, 말할 때를 기다리는 것, 행동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족을, 동료를, 지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 하루, 사도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도전을 생각하면서, 조금 더 여물어진 나의 인격을 기대하며 주님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 본다.
주님!
다양한 인격들이 모여 사는 세상 속에서, 공동체에서, 가정에서, 나 잘났다 자랑하는 사랑없는 지식이 많은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고, 어려움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고, 그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그 인격을 시험하는 것이 주님에게 죄 짓는 것이라 하셨사오니, 나의 지식을 앞세우기에 앞서 남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힘주시고, 은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목장예배를 드릴 때 주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셔서 오늘 말씀을 잘 적용함으로 목장이 부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붙잡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