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목요일
제목: 이 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고린도전서 7:8-16
요약
독신으로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절제할 수 없다면 혼인하라. 혼인한 자들은 갈리지 말고 버리지 말라. 결혼 역시, 목적은 거룩과 구원이다.
질문
1. 나는 나의 은사를 잘 발견하며 은사대로 살고 있는가?
2. 결혼 역시 거룩과 구원의 목적이 되고 있는가?
묵상
오늘 아침 묵상을 하면서 큰 아들이 “엄마, 우리들 교회에서 하는 말이 성경에 나와요.” 한다. “성경에 나온 말을 말씀대로 교회에서 말하는 거지~”라고 답하는데, 아들은 성경에 나온 말이지만,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강조하고 강조하는 이혼하지 말라는 처방, 아이는 생경하고 낯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이 나와 있는 본문을 만나니까 반가웠던 게다. 교회에서 우리들의 삶을 깊이 만져주는 처방, 아직 그만큼 익숙하거나 보편적이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결혼한 이유는 거룩과 구원의 목적이 아니었다. 음행의 연고였다. 이유가 거룩하지 못하고 사명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고 단순한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었지만 하나님의 후대하심으로 결혼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거룩과 구원을 이뤄가셨다.
내 생애사를 보건데 예수님을 믿은 후와 전, 또 결혼 전과 후, 아이를 양육하기 전과 후, 2007년 전과 후, 우리들 교회를 오기 전과 후... 여러 기준으로 분류 가능하다. 그만큼 영향력이 큰 내게 주신 환경이었고 주신 환경으로 달라지는 나를 만난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내게 주신 어떤 환경도 어떤 사건도 의미 없는 것이 무엇이랴 마는... 나의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는 구원과 거룩의 핵심 본질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공동체에 속해 말씀을 듣다보니 뿔뿔이 흩어진 구슬이 꿰어지는 명쾌함과 일관성, 쪼개진 퍼즐이 엮어지고 맞춰지는 희열이 있다. 성경 전체가 구속사로 한 주제라는 건 알았지만, 내 생 역시 하나의 조각임을 깨닫는 순간, 모두가 귀동냥으로 얻은 것이건만 내가 뭔가를 깨달은 것 같은 기쁨이 있다.
우리 아들들... 나는 영적 후사를 찾았지만 남편과 나의 육을 통해서만 채움 받고 싶은 악이 있었다. 어찌해서든 남들은 결혼과 동시에 얻는 자녀를 소원했다. 다수 속에 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 하나님께 내쳐진다는 불안함, 그로 인한 섭섭함과 서운함... 특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더하면 더할수록 왜 내게 자녀를 주시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 그로 인한 위축감, 신앙 없음이 드러나는 것 같은 생각에 괴로웠다. 포장되어야 할 나의 은밀한 죄, 치부가 드러나게 하시는 것 같은 야속함도 있었던 것 같다.
오직,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표는 자녀 주심이었다. 의학의 힘을 빌어야하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나의 자존심과 오기만 났다. 안 주시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기도, 그리고 꼭 한 번만 기회를 드릴 거라는 다짐, 그렇게 아버지 앞에 도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꼭 한 번이라고만 우기는 나, 오기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나를 불쌍히 여겨서 아이를 주셨다.
그런데 오늘, 결혼이든 부모가 되든... 내가 무엇을 하든, 나의 일거수일투족의 자취는 거룩과 구원임을 말씀하신다. 나의 결혼이 음행의 연고였듯, 내가 자녀를 간구한 것 역시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갖추기 위한 이기고 이기려는 야망이었다. 하나님 사랑한다는 사람이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사람임에도 주시는 고난, 망가짐 속에서도 여전히 거룩과 구원을 삶으로 노래한 호세아같은 부르심과 역할을 참아내지 못하는 몸부림이었다. 나의 깊은 악이다.
그런 나의 욕심과 야망에 의해 희생된 우리 아이들, 신앙으로 잘 양육하고 싶은 나의 드러남 속에 감춰진 건 나의 높아짐도 포함이다. “역시 아이를 잘 키우는 구나”하는 나를 향한 칭송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함만인 줄 알았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몸부림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안에 교묘하게 포장되고 변질된 본질이 알아차려지지 않게 숨어 있었다.
하나님의 후대하심으로 아들들이 속썩임으로 끝까지 감춰졌을 나의 악의 근원을 보게 하셨다. 아들들의 수고함으로 애씀으로 내가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 아들로 인한 나의 수고와 애씀에 생색을 낼 수 있겠는가. 결국 나를 위한 훈련이시고 계획이신데... 할렐루야!!
시험관 시술을 받을 때, 19개 였는지 17개였는지 기억조차 없다. 우리 아들들을 얻기까지 수고한 다른 자녀들, 어미인 내게조차 잊혀진 자녀들, 하나님이 생각나게 하셨다. 난자 채취가 19개였던 것 같고 수정란이 17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21명의 자녀가 내게는 있다. 얼굴도 모르고 기억조차 희미한,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셨던 영적 후사들... 육적 후사들... 오늘 아침, 그들을 기억하며 애통했다. 나의 악에 애통했다. 처음 6개를 시술 받고 우리 아들들 둘을 얻었다. 그리고 5년인가 지났을 때, 남겨진 11개의 수정란에 대한 나의 의무와 책임으로 다시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는 사랑보다는 의무와 책임이었다.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 그래서 주사도 맞지 않았다. 그냥 시술만 받았다. 그렇게 11명의 자녀를 또 떠나보냈다.
낙태에 대한 죄를 얘기할 때, 어떻게 그런 일을 할까 귀하고 소중한 생명인데.... 하는 맘이 한쪽에서는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나의 죄는 더한 게 죄책감조차 없었던 악이다. 정말 미안하다. 하나님 주신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 저 천국에서나마 만날 수 있는 우리 아이들, 자라지도 꽃피지도 못하고 사라진 우리 아이들, 하나님이 사랑했고 내가 사랑했던 아이들, 잊혀진 우리 아이들...
오늘 비로소, 나의 거룩과 구원을 위해 생각나게 하시고 회개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우리 19명의 아이들, 먼저 간 나의 아이들이 나를 위해 수고했고 지금 두 명의 아들들은 여전히 내 곁에서 수고하고 애쓰고 있다. 하나님, 나의 악을 도말하시고 회개케 하소서! 감춰진 나의 악을 보고 나니 아버지, 이 전보다 더욱 주를 사랑합니다.
1. 찬양과 감사
① 하나님 감춰진 나의 악을 보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어떤 상황과 어떤 환경에서도 거룩과 구원의 부르심을 향해 가야함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③ 하나님, 항상 감사하고 사랑했지만 나의 악을 보고 나니 하나님의 깊은 사람에 더욱 더 감사하게 됩니다. 아버지,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④ 수고하고 애쓴 우리 아이들을 잘 떠나보내고 지금 곁에 남겨주신 아들들 귀하고 소중하게 잘 다루며 구원과 거룩을 위해 나아가게 결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⑤ 아버지... 이 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