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질 수 있나?
(QT본문: 고전 4장 6절 ~ 21절)
2012-07-07. 토요일.
[본문: 고전 4장 6절 ~ 21절]
[관찰]
하나님의 동역자는, 사역자는,
1) 본을 통하여 교회의 문제를 다루며, 기록된 말씀으로 교회를 가르쳐야 한다. (6)
2)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감당하는 모습을 삶으로 보일 수 있어야 한다. (9~13)
egrave; 바울은 사형장의 죄수처럼 천한 자리에 서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고난을 받았고, (9)
egrave;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 지혜에 무지한 사람이 되었고, 약하고 비천한 자같이 핍박을 받았으며, (10)
egrave; 지금 이 시간까지도 복음을 인하여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를 맺으며, 집도 없이 떠돌아 다녔다고 간증하고 있다. (11)
egrave; 바을은 생계를 위해 수고하며 손수 일을 하였고, 욕을 먹어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해도 참고, (12)
egrave; 비방을 받아도 친절하게 답변하고,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 (13)
egrave; 이에 반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배부르며, 부요하며, 왕노릇 하며, 지혜로우며, 강하며, 존귀한 삶을 살고 있다면서 그들이 종말론적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8, 10)
egrave; 아울러 바울의 부재로 교만해진 일부 거짓 교사들에게는 진정한 사역의 열매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18, 19)
3) 교회(성도)를 권면할 때,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듯 하여야 하며, 부끄럽게 할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 (14)
egrave; 물론, 상황에 따라 부끄럽게 할 목적으로 권면을 해야 할 때도 있다.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낳은 생명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15)
egrave; 아무리 많은 스승이 있더라도 복음이 빠진 가르침은 아무 소용이 없다.
5)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 (16)
egrave;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을 본받으라는 의미
egrave; 구체적으로? 사랑, 고난, 겸손, 화합…
성도는, 교회는
1) 교회 내에 분쟁이 생기면, 기록된 말씀의 범위에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6)
egrave;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을 치켜세움으로써 서로 대적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6)
2) 그리스도인의 삶이 헛된 말이나 지식에 있지 아니하고, 인격과 삶의 변화가 있는 열매맺는 삶에 있다는 것을 증거해야 한다. (19, 20)
egrave;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니라.
바울의 질문(고린도 교회의 문제에 대한)
1)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7)
egrave;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은혜와 은사를 주셨다.
egrave; 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함인데, 이 다양한 은사를 자랑과 교만의 도구로 쓰고 있다면 이것이 문제 아닌가?
2)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7)
egrave;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
3)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7)
egrave; 그렇다면, 선물로 받은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정당한가? 게다가 이를 근거로 남을 판단까지 하는 고린도 교인들.
[교훈 적용]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엊저녁에 수년 전 탈북하여 현재 남한에서 교회를 하고 있는 어떤 한 자매님의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에 대한 간증을 들으면서, 죽음까지 각오한 믿음의 실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예수님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준다는 데도, 믿음을 고백하여 순교를 택하고,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그 동안 누렸던 것을 다 잃고 살아가면서도, 말씀 붙잡고 살아가며,
천국소망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그들의 삶이 바로 순교자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오늘 바울 사도는 풍요로운 물질적 삶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며 영적 교만에 빠져있는 고린도 교인을 향하여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비롯한 사역자들이 어떤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수고하고 있는지를 기록하면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구경거리도 되었고, 세상가치는 아예 거부하고, 핍박도 기꺼이 받으며, 먹고 마실 것도 없이, 입을 것도 없이, 때로는 동족들에게 맞아가면서, 정처없이 떠돌기까지 하였다고 간증하는 바울.
누가 욕을 해도 축복해주고, 핍박해도 참고, 비방을 해도 친절하게 대하고….
이것이 복음을 위해 기꺼이 감당해야 할 고난과 핍박인데, 과연 내가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해도 자랑하려 하고, 남이 나를 높여주기를 바라고, 어떻게든 내 것은 챙기려고 하고, 누가 조금만 경시하면 분을 참지 못하고, 핍박은 사절하고, 비방하면 두 마디 세 마디 더 하고…
절망, 절망, 절망이다.
이게 내 모습이다.
십자가의 길은 일시적 감정이나 충동으로, 생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하루 하루의 고달픈 삶 속에서도 천국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을 때,
주님을 위해서라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포기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누가 무시하거나 홀대를 할 때도 참아내며, 오히려 친절하게 반응을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내일 주님을 만날 것처럼 오늘을 사는 종말론적 신앙관과 그에 따른 삶이 수반될 때, …
이럴 때만이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 낼 수가 있는데, 감히 내가 그렇다고 고백할 수가 없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순교했던 사도들과 사역자들, 선교사들, 그리고 이름없이 순교한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
칼에 목이 베어 죽고,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 죽고, 불에 타 죽고, 사자 밥이 되어 죽고, 기름 솥에, 불 가마에 익어 죽고….
너무 너무 끔찍하게 죽고 죽은 하나님의 자녀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의 길에 주님이 함께 하셨다.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셨고, 고통을 이길 힘을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잠깐의 육신의 몸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 주님은 물으신다.
주님!
십자가 형극의 길이 마음으로 생각할 때 참으로 두렵고 떨립니다.
제가 그 상황에서 과연 저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고백하며, 기꺼이 십자가를 질 수 있을지?
사소한 것에도 나의 것을 찾으며 아직도 육이 살아 움직이는 이 모습이 과연 주님을 위한 제물이 될 수 있을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질 수 있을지?
이 모두가 자신이 없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주님밖에는, 주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주님께서 붙잡아 주지 않으시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작은 것 하나부터 십자가 지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해 주옵소서.
오직 주님으로만 이 길을 갈 수 있음을 고백하오니, 주님 붙잡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