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3:1-15
교회 내 분쟁이 발생할 때 는 주의 깊이 사건의 전후, 그 사람들 각자의 문제까지,
주변 상황까지 다 검토 할 계기. 무조건 잠잠하라든지 무조건 순종하라면 문제가
더 크게 폭발하든지 더 깊이 불신의 심연을 만들어 버리죠.
각자 내 죄의 실체를 보는 매일의 연습이 없다면 그 크고 깊은 빙하의 심부를
진단할 수 있나요.#65279;
그래서 지난 해, 재작년 내내 저는 예레미야서의 멸망과 포로의 큐티책을 들고 앉아
실업과, 감자 토마토로만 부식 연명, 어느 집사님의 쌀 배달 경험-생전 첨 남에게 받은 쌀-,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내가 담은 김치가 그리도 달던. 그러고도
친정엄마의 임종 얼마전, 먹거리가 바닥 나도 구직의 조각 구름은 안보이고
남편은 그저 방안에 앉아 나와의 충돌마큼은 피하려 조심하고...저는 급기야 남동생으로 인한
나의 보증 피해, 굶주림을 병환 중인 엄마에게 얘기해버리는 잔인한 딸.
이런 일들은 결국 제가 소위 교회내 지도자들과 격돌함으로 초래한 주님의 징계였을지.
암튼 그 경험으로 주님의 징계는 얼마나 엄중한것인지 체험하는 중요한 일이였고
김 양재 목사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매달리게 된 귀한 과정이였죠.
하지만 내 죄를 보는 일이 너무나 서서이 내 안에 시작된 이유는 피해 의식과
지도자에 대한 깊고 장대한 분노이기에 .아직도 큰 소리로 이 먹통! 하고 외치고싶은 것이 있죠.
어제 목장에서 내 악을 보라는 교회 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숨통 트이는 일이냐! 하고
오늘 아침에도 랄라랄라 노래하는 날 보면서 남편도 미소하지만 자기 삶이니, 죄를
하나님께만 말하지 뭐하러 남앞에서 하나? 도무지 이해 불가 단계인데 그와 똑같은
교회의 인식 속에 나는 성경 보기도 그리 빈약했고 죄에 대해 심각히 생각한 순간에도
나눌 길은 없었죠. 나누긴 커녕 큐티하는 지도자도 없던 수 년의 교회. 죄고백, 악을 보기
이런 단어조차 예사롭게 나오는 걸 조심하니.
수술, 치유 또한 치부를 드러내는 피와 고름 진물 냄새 짙은 제사 아닌지.
늘 인격 상식 매너 이상 인간 심부에 들어가지 못하니 .
이제는
매일 말씀을 구속사적으로 차례대로 묵상하며 내 안의 로마의 악, 그 실체를 잘 볼 때
책망을 달게 받고계명에 주의, 순종할 수 있으리라, 그것도 목장 안에서 실토하며
자라갈 것입니다.
김 양재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목자, 부목자를 제게 주신 사역자로 존중하고
목원들과 지어져 갈 것입니다.
왜냠.
공통 언어, 100% 죄인 안에 내 죄, 내 악을 보라는 말씀이 뚫고 가니 짐이 훨 가벼워요.
이 시대 죄 고백과 나눔의 교회야말로 주님의 언약에 계시하신 제사법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