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에 한 남자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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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03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누군가로부터 받는 괴로움!
혹은 역으로 누군가를 내가 괴롭혔음에도
쌍방이 기뻐할 수 있을까?
이곳의 글들을 몇편 읽으며 밟아 줌에 감사! 라는 글귀들을 봅니다
밟혀본 자만이 감사할 수 있는 감사!!!
참으로 진귀한 감사를 저도 경험하게 되여 감사하네요
엊그제부터인가
내가 왜 이곳에 들어와 만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나고 있을까?
잠시 일상속에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아침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하는 바울을 보며
정답을 찾아봅니다
내 교회 남의 교회를 떠나
우주적인 거대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향하는 내 육체가 될 수 있을까?
이곳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조국은 별빛 아래 고히 잠드는 밤이겠지요
모두들 주님 품안에서 단 잠 주무시길 바랍니다
여기오니 모두들 자기를 벗는데.........
저도 오늘 제 유년의 날들을 벗어버린 오래전의 글을 찾아 올려봅니다
여닐곱살 때였다.
난생 처음 아빠와 오빠 말고 평생토록 기억하게 된 한 남자와 시골 작은 교회안에 있게 되었다.
나는 서향으로 낸 교회 유리창 문틀에 기어 올라가 이제 막 거대한 붉은 빛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석양을 동심에 담고 있었고, 그 남자는 내 이름을 몇번인가 부르더니 올갠 앞에 앉아 꽃과 같이 고웁게 나비같이 춤추며... 라는 노래와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번갈아 가며 쳐주었다.
그때만해도 작은 산들은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었던지라 그 남자가 건반을 두드리며 치는 노래를 난 산들의 높낮이 따라 손 대신 눈망울로 건반 대신 산 봉우리들을 두드리며 저녁놀이 사라질때까지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그후 수많은 우여곡절을 치르는가운데 그 남자는 큰 형부가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 집안은 전쟁의 도가니로 변했다.
아마 그는 동네에서나 교회에서나 제일 멋진 남자로 통했을 것이다.
그의 모친은 똑소리나는 권사님이셨으며 그 시절 그 집안은 그만하면 인테리측에 속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절대음을 타고났는지 모든 악기들을 잘 다루었다.
그의 음악은 쾌락의 꽃으로 상징되는 사이렌 처럼 아름다왔으나 슬프게도 주변의 사람들에겐 비극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트로이 대전의 영웅 오딧세이 에 보면 그는 트로이의 목마를 타고 부하들과 함께 아테나 신전앞에 도착하는데 바로 그순간 아테나 신상앞에서 조국의 승리를 빌고 있었던 카산드라 란 예언녀를 그의 부하들이 능욕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했는가?
이에 분노한 아테나는 그들에게 쾌락적인 형벌을 가하는데 그것이 곧 쾌락의 신화로 알려져 있는 사이렌 섬 이야기다.
사이렌 은 얼굴은 사람인데 하반신은 물고기의 지느러미같기도 하고 새의 깃털 같기도 한 것을 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기가막히게 아름다우면 그 노래에 홀려 자신의 생명이 죽어가는 것 조차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아름다운 노래가 사람을 파괴 시키는 무기라는 걸 생각해보면 사탄은 고대나 현대나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것들을 통해 인간을 파멸케하는 작전을 쓰고 있는게 아닐까?
쾌락적인 범죄에 쾌락적인 형벌을 가한 아테나에 의해 그들은 오딧세이와 함께 10년을 쾌락의 바다에서 방랑해야만 했다.
허나 내 어린 시절에서 부터 성년이 되어서까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 형부는 무엇때문에 영웅 오딧세이보다 더 기나긴 30년이란 세월을 쾌락의 바다에서 표류했을까?
그는 아직도 내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10살도 채 못되었던 내가 원수를 사랑하라. 는 성경 말씀을 품고 그를 위해 30년 넘게 흘린 기도의 눈물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느날 국제 전화로
그 형부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뭐라 했는가?
원수를 사랑할려면 끝까지 사랑할 것이지 왜 그때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달라고 구하지 않았는가?
난 십년이 세번 돌아도 끝나지 않는 쾌락과의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친 형부와 언니에게 종전을 선포했다.
내가 아는한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큰 언니에게 내려진 자유,
그것은 형부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였다.
넉달가량의 병상속에서 형부는 자신의 모든 죄들을 십자가의 주님앞에 일일이 고백한 후 용서 받은 죄인이 되어 아주 평온한 임종을 맞이했다 한다.
헤아려보면 죽음이야말로 형부가 더이상의 쾌락적인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신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이 아니였나 싶다.
모태 신앙인으로 태어난 그에게 신이 준 음악의 재능을 쾌락의 도구로 넘겨 주었을 때, 그 육체도 함께 쾌락의 도구화 되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다.
영웅 오딧세이는 사이렌 섬 가까이 이르자 밀납으로 부하들의 귀를 막도록하지만 자신은 그 절묘한 아름다움과 쾌락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내면을 속일 수 없어 귀를 막지 않는다.
대신 부하를 시켜 자신의 몸을 돛대에 단단히 묶는다.
그래도 그의 몸은 어쩔줄을 모른다.
온 몸을 뇌쇄시키는 관능적이며 탐미적인 사이렌의 노래소리 때문이다.
돛대에 몸을 묶은 결과 그는 예외의 한 사람이 되어 그 노래를 듣고도 죽지 않고 빠져 나온다.
큰 형부도 삽십년이란 세월을 쾌락의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그 소중한 영혼이 쾌락에 사장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여성들과의 쾌락속에서도 오로지 남편의 구원을 위해 일생을 산 조강지처를 끈질기게 붙잡고 놓지 않은 그의 집념에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항상 눈물로 기도하는 아내야말로 자신에게는 없어서는 아니될 생명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혼을 절실히 원하는 아내를 상상을 넘어선 집념으로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주님께 돌아와 주님 품에 안기게 된 것이 아내의 기도를 믿는 집념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아내의 기도 때문이였을까?
내 자신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면 할수록
한 영혼이나
한 교회나
한 나라를 놓고 중보하면 할수록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액즙-
그 눈물에 억겹의 두터운 비늘이 녹아 떨어지면서 보이는 이가 있다.
소름끼치도록 처참한 피투성이의 나신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없다면
정녕 빌 길도
살 길도 없었으리
하여
그 인정 많은 피에 범벅이 된 채,
내 몸과
내 맘이 가야 할 곳
그곳을 향해
오늘도 나는 가고 있을까?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