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석씨! 정직한 눈으로 거울을 보십시요..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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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02
정 우석씨!!
눈이 멀고 귀가 멀어서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까?
거울을 보지 말고 말씀을 보라구요?
거울을 통하지 않으면 사람이 자기모습을 보지 못하듯이
말씀을 통하지 않으면 사람이 자기영혼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영적 거울인 것입니다.
영적 거울을 봤더니 내 영혼의 모습이 거짓된 교만으로 죄인이더라는 것입니다.
교만이란 낮은 자가 자기를 스스로 높은 자로 여기는 것이라는 의미는 잘 아시죠?
그것이 거짓이며 죄인 줄 말씀을 보고 깨달았다면
마음으로는 여전히 자기를 높은 자로 여기면서
말로만 난 낮은 자야, 죄인이야 하지 말고..
실제로 낮은 자리에 내려와서 낮은 자임을 증명해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보다 몸으로 나타내는 진실한 고백이 아닙니까?
말씀을 보았더니
저것들, 하며 입방아에 오를 죄인들을 보거들랑
그들을 안아줄 수 있겠냐는 질문을 주님이 언제 요구하시더랍니까?
말씀을 보면 그 속에 있는 말씀의 의도를 잘 알아야지요.
말씀으로 그 속의 뜻도 눈에 보이게 다 나타낸다면 사람에게 지각을 사용하라는 말씀이 왜 있겠습니까?
그런 질문은 깨끗한 흰옷 입은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질문인 것입니다.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때
너의 흰옷이 더렵혀지더라도 그들을 안아줄 수 있겠는냐는 것이지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안아줄 수 있겠는냐는 질문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일 주님이 그런 질문을 하셨다면 그 질문의 의도가
그들을 안아줄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자신을 흰옷 입은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묻는 말씀이 아니겠는지요..
안아줘야겠다고 다짐을 할 정도라면 자신을 흰옷 입은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선악과 나무를 두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시험을 하셨듯이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두고 말씀으로 시험한 것인데
아담이 걸려 넘어진 것처럼 시험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입술로는 내가 100% 죄인이다 고백하면서
마음으로는 나는 저 더러운 옷 입은 죄인들과는 다르지.. 하고 자기자신을 은근히
흰옷 입은 사람으로 여기는 것과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내 몸이 더러운 옷과 같음을 깨닫고
낮은 자로 죄인의 자리에 앉는 것 중 어느 것이 진짜 가증한 것입니까?
사람이 말씀의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볼 때
자신이 거짓된 자리에 앉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벌써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거짓에서 진실로 옮겨진 자로서 그는 이미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진실을 아는 자로서, 그럼으로 인해 이미 죄인이 아닌 그 마음속 진실을
당신은 어떻게 세상에 증명해보이시겠습니까? 말로요?
나는 죄인이야 혹은 나는 생명을 얻은 자야 라고 말만하면
세상이 그 말을 쉽게 믿어줍니까?
예수님은 죄인 아닌 죄인으로 오셔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가 어떻게 자신이 받은 구원과 생명을 세상에 증거할 수 있는지
몸소 본을 보여주셨지요.
죄인의 자리에서 정죄 받고 죽임 당하는 십자가를 진 몸의 행실로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보고 지킨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그 몸의 행실을 어떻게 판단했나요?
아무 죄도 안 보이는데 그냥 마구잡이로 무조건 죄를 정했나요?
율법에 의하여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해서 죄를 정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7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죄 없는 사람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제사장에게 우리 몸을 보이고
우리는 죄없는 사람이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는 뜻과 같이요..
그랬는데 예수님과 똑같이 우리들교회 제사장도
우리에게 죄를 정하고 못을 박음으로써 제사장 직분답게 우리 몸을 피흘리는 산제사로 드려주었죠.
답답한 이가 말씀하신 대로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했는데도 말입니다.
역시나 죄사함을 받았다는 고백조차도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고백한 것이 우리가 죄인이었지만 예수믿고 예수와 하나되어
이제 죄인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로 고백한 것이었는데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죄를 정하여 못을 박았으니..
우리 몸이 못에 박히고 죽어서라도 우리의 속진실을 밝히고자 한 것이 몸의 고백이 된 것을
정우석씨는 우리가 침대에서 뒤엉켜 광란하는 것이 몸으로 고백하는 것이냐고 되물으셨는데
죄송하지만 말씀의 거울에서 본 저의 진실은 그 모습이 아니거든요?
동성애하면 동성끼리 침대에서 뒤엉켜 광란하는 것이 동성애인줄 아시나 본데
이성애하면 이성끼리 침대에서 뒤엉켜 광란하는 것이 이성애인줄 아시나 보죠?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신 고귀한 사랑이 동물의 교미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흙덩이로 된 육체(육축)에 하나님의 생기(하나님의 사랑)가 들어간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라면
사람이 동물처럼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과 사람으로 행하는 것은 분별할 줄 아셔야죠.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말이죠..
* 정우석씨에게
정우석씨가 눈이 멀고 귀가 먹은 자들의 대표로 나서신 겁니다.
쓰신 글을 삭제해 버리시면 저의 이 답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의 이 답변이 어떻게 나왔는지, 왜 나왔는지
마치 하나님 없이 떠도는 사람이 자기존재에 대한 의문처럼
그 의문이 오리무중이 되어 허공에 빠져버린 꼴이 되지 않았습니까?
본질 없는 현상이 없을진대
온갖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나 그 진짜본질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동성애현상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