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닛시
(QT본문: 시 144편 1절 ~ 15절)
2012-06-29. 금요일.
[본문: 144편 1절 ~ 15절]
[관찰]
하나님은,
1) 나의 안전한 피난처(바위) 이시며, 전쟁에 대비하여 나를 훈련시키시는 분이시다. (1)
2) 나를 사랑하시며, 나의 견고한 요새이시며,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이시다. (2, 10, 11)
3) 그 백성을 세우신 왕에게 복종하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2)
4) 잠깐 동안 있다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나를 돌보시며, 생각하시는 분이시다. (3, 4)
시편기자의 기도
1) 하늘을 여시고 강림하시며, 산에 닿으셨을 때 연기가 나게 하소서. (5)
2) 거짓과 위선(거짓 맹세)으로 가득한, 대적을 물리쳐 주시고, 나를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소서. (6~8, 11)
하나님 백성의 특권과 축복
1) 악기로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특권을 가진다. (9)
2) 자녀의 축복을 누린다. (12)
3) 물질의 축복을 얻는다. (13, 14)
4) 평화의 축복을 누린다. (14)
[교훈 적용]
1. 여호와 닛시
오래 전 이스라엘 광야 어느 한 들판에 묵묵히 양을 치던 작은 목동이 하나 있었다.
그는 양들이 무리를 이탈하지 않고 마음껏 풀을 뜯어먹으며 잘 자라도록 돌보고 있었다.
하루는 배고픈 사자가 나타나 그 목동이 치는 양을 잡아먹으려고 공격을 한다.
놀라 울음소리를 내며, 살려달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양들
하지만, 이 목동은 당황하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물맷돌 하나를 가만히 집어가지고, 사자를 향해 정확히 겨냥하고는 냅다 집어 던졌다.
물맷돌은 정확하게 사자의 눈탱이를 맞혔고, 이에 당황한 사자는 “아니 이게 뭐야” 하지만,
곧바로 두 번째 물맷돌이 날아온다.
이번엔 아구통이다.
다른 목동이 치는 양을 잡아 먹을 때는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던 터라,
화가 난 주린 사자는 이제 공격 목표를 양에게서 목동으로 바꾼다.
그리고 날 선 발톱을 세우고는 으르렁 거리며 잡아먹을 듯 목동에게 달려든다.
세 번째 물맷돌이 날아가는 순간이다.
이번에도 물멧돌은 어김없이 사자의 눈두덩을 맞추었고, 이에 목동은 주저하지 않고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도리어 사자를 공격한다.
잠시 싸우는 듯 하지만, 뭐에 뒤집어 씌웠는지 목동이 물러설 기세가 없다.
이제 사자는 선택의 귀로에 선다.
“아니, 내가 사자인데, 이렇게 당하고, 양도 한 마리 잡아 먹지 못하고 이대로 가야 한단 말인가?”
자조 섞인 사자의 독백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 목동을 이길 재간이 없다.
뭘 믿는지 너무 당당하고 오히려 자기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판단이 선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저만큼 들어가고, 이제 사자는 꼬리를 내리고 주춤 주춤 하며 양들과 목동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나간다.
정말 이러한 장면의 연출이 가능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맹수 사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갖도록 했으며, 더욱이 싸워 이기도록 하였을까?
묵상을 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확신하자.
지금 양치기가 있는 곳은 광야, 아무도 없는 곳이다.
들짐승과 강도의 위협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외롭고 쓸쓸한 곳이다.
그곳, 광야에서 양을 치며, 기다리는 많은 시간 동안 그는 역사를 통해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가나안 족속과 싸워 승리하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도 동일하게 자신과 함께 하셔서, 자신을 대신하여 싸워주시고, 또한 구원하시며 안전하게 지켜 보호하실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훈련시켜 전쟁에서 싸워 이기게 하셨으므로 찬송하겠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양떼를 치면서도 자신이 홀로 외로울 때, 늘 함께 하시며, 자신을 훈련하여 위험한 위협의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지켜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또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믿음을 키워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우고 있을 때도 다윗은 동일한 생각을 하였다.
거대한 장수들을 앞세워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블레셋을 보면서, 무수한 위험 가운데 함께 하셔서 위협들을 물리쳐 주셨던 하나님이, 블레셋 또한 동일하게 물리치실 것을 확신하였기에, 그는 왕께 간청하여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대결할 수 있었다.
그 싸움은 이미 이긴 싸움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싸워주실 것인데, 꼭 대결의 결과를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양떼를 지키며, 수없이 반복하여 하나님께서 훈련시켜주신 돌맷돌 던지기는 이미 승률 100%의 경험치를 쌓아 왔기에, 다윗에게 장수 골리앗은 양떼를 위협하는 짐승 한 마리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은 물맷돌 하나를 가만히 집어 들고는 정확하게 눈과 눈 사이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아 버렸다.
그리고는 쓰러진 골리앗의 목을 베어, “여호와의 구워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며,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둘째,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훈련을 받자.
다윗은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위험한 위협적인 환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나를 훈련시키셔서 싸워 이기게 하신다.
훈련되지 않은 돌팔매질로 어떻게 굶주린 짐승떼를 물리칠 수 있으며, 내어놓은 나의 손길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기도를 통해 간구하며, 삶의 순종을 통해 경험하는 훈련의 과정이 없이 어찌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역사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셋째, 바라크의 복을 누리자.
다윗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1),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9)라고 고백한다.
어떤 때 노래하는가?
뭔가 일이 잘 풀렸을 때, 기대하는 바가 이루어 졌을 때, 종종 흥얼거리며 기분 좋아한다.
왜 찬송하는가?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서 역사하여서, 나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승리케하시니 감사가 절로 나온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찬양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바라크의 축복,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관찰하며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이 승리하신다. 여호와 닛시라는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광야에서 하나님께 훈련받으며 승리했던 경험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이 위험한 환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승리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싸우는 것이기에, 그 하나님을 믿는 확신이 있다면, 삶의 현장에서 늘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의 전 삶의 영역에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대접받으시며, 나를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하신다.
나의 오감을 통해, 나의 생각을 통해, 나의 순종하는 삶을 통해,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오늘도 “여호와 닛시”를 외치는 그런 하루를 기대해 본다.
하나님!
다윗의 삶 속에서 역사하셔서, 승리케하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찬양하게 하셨던 그 하나님의 역사가 저의 삶 속에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