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받는 기도의 조건
(QT본문: 시 142편 1절 ~ 7절)
2012-06-27. 수요일.
[본문: 142편 1절 ~ 7절]
[관찰]
하나님은,
1) 내 불평과 근심걱정을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이시다. (2)
2) 내 인생여정을 아시는 분이시다. (3)
3) 나의 피난처요, 분깃이시다. (5)
4) 내가 대적에게 고난을 받을 때,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6)
5)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7)
시편기자의 상황
1) 시편 기자는 원통하고(my complaint), 근심걱정(my trouble)하며, 심령이 상해있었다. (2, 3)
2) 그 이유는 시편기자를 잡으려는 대적들의 핍박 때문이었다. (3)
3) 게다가 시편 기자에게는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피난처도, 생명(life)을 보살펴주는 사람마저 없었다. (4)
4) 이에 시편기자는 소리 내어 절박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고(for mercy) 있는 것이다. (1)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
1)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분깃(소망, 기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5)
2) 하나님은 대적에게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6)
3)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후대하실)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7)
[교훈 적용]
1. Paradime shift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은 그냥 보통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게 되면, 그 다음으로 이름도 날려 보고 싶고, 권력도 가지고 싶고, 가치 있는 일도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사람은 다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 보니,
이것을 먹으면 저것을 먹어보고 싶고,
이것을 입으면 다른 사람이 입은 저것도 함 입어보고 싶고,
10평, 20평 집에서 살다 보면, 30평 40평 집에서 함 살아보고 싶고…
참으로 찌질하지만, 이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인생 아니겠는가?
겉으론 아니라 하지만,
이것 저것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일 뿐,
할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을 취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런 환경을 가지려다 보니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니, 근심걱정이 가득하게 되며, 잘된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근심걱정과 비교하다 보니 불평불만이 가득하게 되고
불평불만이 가득하니 나를 원망하고, 남과 환경을 탓하게 되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잠시 있다 갈 나그네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늘 나라 본향 집으로 돌아갈 확신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와 살이, 먹고 마실 것이요,
거룩이, 입어야 할 옷이며,
성령의 전이, 살아야 할 집이 아니겠는가?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여, 주린 배를 채우라는 마귀의 유혹 앞에,
말씀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은,
내가 진정 먹고 마셔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보여 주셨다.
세상의 온통 더러운 가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죄로 얼룩진 인생의 옷을 입고, 주님 앞에 설 수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거룩한 의의 옷을 만들어 주셨으니
믿음으로 이 의의 옷을 입고 주님 앞에 서는 것이다.
십자가 보혈 상표가 붙은 의의 옷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주인으로 계신 집이 바로 성령의 전이다.
이 집은 주인이 바뀌면 바로 없어져 버리고 마는 집이다.
하지만 주인이 하나님이요, 예수님이요, 성령님이시면,
그 집은 사랑과 평강이 넘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집이 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큰 평수의 집을 추구하지만,
나는 사랑과 평강이 넘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이 집이 좋다,
그래서 나는 영원토록 이 집에서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고 싶다.
주여, 이제 찌질이 가치관에서 천국 가치관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다윗의 기도로 무장하자
절박한 상황을 만나고, 분통터지는 일을 겪고, 근심과 걱정되는 일들을 만났을 때,
무엇이 진정한 위로와 회복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오늘 본문 4절에서 다윗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피난처도, 생명을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다 막혀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지금 다윗이 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6절에서 내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I am in desperate need)고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끝난 인생인 것을 알기에,
다윗은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께 살려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말씀이 응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이며,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세상인데,
그 무엇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끝내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 과정을 섭리하실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할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요, 나의 분깃이시다.
원통하고, 근심걱정하며, 심령이 상하는 절박한 상황이 와도,
여기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시다.
내 인생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생여정 길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은 어떤 고난의 환경에서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나를 후대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건데,
고난의 환경을 겪었을 때, 세상을 피난처로 살아왔던 못난 찌질이였음을 자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벗하며, 내 힘과 지혜를 의지하고, 세상가치를 추구했던 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찌질이 인생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하나님 당신이 직접 제 죄값을 치러 사랑을 보여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요.
그런 하나님을 떠났던 동안에도 여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갈급하게 하시고, 은혜로 다시 회복시켜주시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요.
오늘 다윗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 간구한 기도가 이제 제 평생의 기도가 되어,
어떤 고난의 환경에서도 이전의 죄의 모습이 아닌,
의의 자녀로서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