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 내기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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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02
2007-03-02 골로새서 (Colossians) 1:15~1:23 ‘흉내 내기’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목사님이 자주 쓰시는 말씀들을 생각하며
목사님은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그 말씀들이 나오는 성경의 원전을 알아가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의 권위와
그 말씀을 은혜로 바꾸시는 목사님의 지혜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늘 본문의 ‘거룩하다’의 사전 풀이가 ‘성스럽고 위대하다’에서 느끼듯이
거룩은 사악한 나와는 거리가 먼 말이라 생각했고 전혀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뒹굴며 살 때 세상은, 특히 대한민국은 참 좋은 곳이라 생각하여
젊은 시절 유학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마다했고,
형제들과 어머니까지 미국으로 이민 가신 후에,
우리도 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살기 좋은 이 땅을 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죄 짓는 일을 즐기며 살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오래 된 경제 이론의 지적처럼
나 같이 사악한 사람이 많아지면
도덕의 기준이 하향평준화 되고 선의 개념까지 바뀜에따라
거룩한 사람들은 고지식한 사람, 시대의 조류에 둔감한 사람이 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낮추거나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그러던 내가 ‘결혼의, 인생의 목적은 거룩’ 이라는
목사님의 단호한 말씀에 공감하면서 거룩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듯이
좋아하는 대상의 무대를 바꾸어, 거룩한 사람을 찾아 은연 중에 따라하다 보면
어느 날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느끼기도 한다.
“아니, 저 사람이 이럴 수가, 럴수가, 럴수........”
이럴 때 목사님의 멘트가 생각난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헛갈리기 시작한다. 나한테 하시는 말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더욱 거룩을 흉내 낼 대상을 찾아보지만 인간은 대상이 아니라신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그 대상을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신다.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지만,
나와 같은 육체로 오셔서 육체로 죽으신 게 분명한 사실이고
다시 살아나신 것도 사실임에,
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를 닮으라는 말씀
닮기 어려우면 흉내라도 내기에 힘쓰라는 말씀.
캐나다에 간 용희의 고난을 이 곳에서 라이브로 전해들었다.
재형이와 동갑이라 늘 비교되면서,
목사님의 칭찬, 믿음, 직분, 외모, 성격, 성적 어느 것 하나
재형이에게 양보하지 않던 용희가 지금 힘들단다.
진작에 거룩해졌으면 거룩한 위로를 해 주었을 텐데
자기 전에 소식을 듣고도 한 마디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아린 가슴 안고 잠을 청했더니 잠 끝이 개운치 않다.
“용희야, 캐나다 대 평원의 白雪을 보며
흠 없는 순백을 닮으라고, 그래서 거룩해지라고
너를 그곳에 끌고 가셨나보다.
고모부 사랑하고 더 많이 밟히렴.
너 위해 기도해주는 100사람 보다
고모부가 더 소중한 사람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