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오니!
(QT본문: 시 141편 1절 ~ 10절)
2012-06-26. 화요일.
[본문: 141편 1절 ~ 10절]
[관찰]
고난의 상황
1) 하나님을 부르며(I call to you), 부르짖을(I call to you)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속히 임하소소,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1)
2) 올무와 함정을 만들고 그물을 놓아 의인을 잡으려는 상황. (9, 10)
고난받는 자가 취해야 할 모범
1) 손으로는, 주의 앞에 분향함 같이, 저녁 제사같이 항상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나의 손 드는 것)해야 한다. (2, 5)
2) 입으로는, 범죄하지 않도록 파숫꾼을 세워야 한다. (3)
3) 마음으로는, 악한 것에 이끌리지도, 악한 행위(생활)에 참여하지도 않아야 한다. (4)
4) 귀로는, 의인의 책망을 은혜로 여기며,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 거절하지 않아야 한다. (5)
5) 눈으로는, 주 여호와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my eyes are fixed on you) (8)
6)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이어야 한다. (I take refuge in you) (8)
기도응답 / 악인을 심판하심
1) 악한 통치자들은 벼랑(낭떠러지)에 버려지는(thrown down) 참혹한 심판을 받는다. (6)
2) 악인들은, 사람들이 밭을 갈아 흙덩이를 부스러뜨림 같이, 완전히 멸망한다. (우리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졌도다, They will say, our bones have been scattered at the mouth of the grave). (7)
[교훈 적용]
1. 환경을 주신 하나님을 볼 것이라.
어려운 환경이 닥쳤을 때 환경을 볼 것인가? 아니면 환경을 주신 하나님을 볼 것인가? 의 갈림길에서 어느 편을 선택하는가는 신앙의 내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겠는데, 하나님 편을 선택하는 적용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여정을 돌아보건데 쉽지 않았다.
내 생각, 내 감정이 먼저 꿈틀거린다.
그리고 한바탕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 시간을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게 되고,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본다.
분명히 모든 환경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인데, 나의 죄를 보지 못하니, 남의 탓을 한다.
그러니 탓의 대상이 된 사람과는 관계가 좋아질 수가 없다.
나는 또 어떠한가?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하여 모든 보는 시야가 부정적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관계를 화평케 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나 또한 내 이웃과 내 자신과 화평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데, 고난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니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수고한 자가 아니었던가?
그 환경은 내 죄를 보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환경이 아니었던가?
나의 죄를 먼저 봐야지,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해 불평불만으로 가득하다면, 이는 그 환경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탓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 낮아지고, 더 가난해져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다는 힘 다 빼고, 오직 주님 한 분만이 내 생명이 되심을 매일 매 순간 고백함으로 회복되는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주님의 눈으로 제게 주신 환경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환경에 사용된 사람들은 나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로 여기고 용서하며 관계회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내공을 허락하옵소서!
내가 조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교만함을 다 버리고 지극히 낮아지고 가난하여져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2. 내 입술에 파숫꾼을 세우소서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마음이 틀어지고, 입으로 화부터 내는 일이다.
그야말로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이것은 사실 신앙에 앞서 인격의 내공의 문제다.
겉모습은 전문가로서 그럴 듯해 보이는데, 이해관계가 안 맞으면, 내가 손해 볼 것 같으면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쓴 소리를 한다.
그러니 믿지 않는 불신자와 별 구분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께 붙잡혀 있지 않으면 세상과 별로 구별이 없이 살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믿는 사람들이, 교회가, 하나님이 욕을 먹는 것이다.
하나님, 세상과 구분되지 않는 쓴 소리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 죄를 용서하시고,
제 입술에 파숫꾼을 세워, 쓴 소리가 아닌 온유한 소리로, 겸손한 소리로, 사람을 살리는 소리로, 복음을 전파하는 소리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일에 사용되는 입술이 되게 하옵소서!
3. 악인의 편에 서지 말자
이해관계가 생기면, 하나님의 방법은 잠깐 꼬리를 감추고, 호의를 얻기 위해 세상의 편인지 아닌지 가리지를 않아 하나님께 많은 죄를 지었다.
먼저 기도하고 분별한 후 행동에 옮겨야 하는데, 일단 일을 하고 보자는 심산으로 세상적 방법을 사용했으니, 가졌던 많은 것을 잃은 지금의 결과는 그래서 당연하다.
이것이 말씀으로 해석되지 않았을 때는 얼마나 세상을 원망하며, 나를 이렇게 만든 자들과 환경을 탓하며 분노하며 살아왔던지…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반듯이 심판하시고 징계하신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다.
이제 어느 편에 서서 누구를 의지하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기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죄를 지를 시간이 없도록, 남는 시간은 무조건 최선을 다해 말씀에 집중한다.
그래서 나는 말씀을 연구하며 묵상하고 기록하는 이것을 내 사역을 여긴다.
하나님께서 내가 죄를 짓지 않도록 이 사역을 주신 것이다.
충성함으로 사역을 감당함으로 죄인의 편에 서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주님, 제게 은혜주시고, 힘주셔서 현재 제게 맡겨주신 사역,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4. 남의 말 듣기가 쉽지 않아요.
뭐 잘난 것도 없는데, 남의 말 듣는 것이 참으로 쉽지가 않다.
직업적으로도 회사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 주거나 변화에 맞게 적용시켜 주고, 실행을 연습시키며, 교육을 하는 일이다 보니, 가르침을 받기 보다는 지도하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게다가 척박한 환경에서 도움도 없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 전문가까지 되었으니, 그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
그야말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인생을 살아온 내 모습을 본다.
95년 주님을 만났지만,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혼합된 삶을 살았고, 어느 편이 더 강한지에 따라 은혜롭기도 하였다가, 세상과 별반 차이 없이 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혼합된 두 마음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환경으로, 사람으로 징계하셔서 모든 것을 잃게 하셨으니, 합당하도소이다 외에 무슨 말을 하리오.
내 삶의 결론이다.
이제 그 하나님이 당신 앞에 거룩하라 하신다.
너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라 하신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말씀에, 환경에 반응하라 하신다.
모든 통로를 통해 책망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하신다.
열린 귀를 가지라 하신다.
주님, 맞습니다.
주님은 모든 통로를 통해 제게 말씀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제 귀를 열어주시고, 들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