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미학을 생각하며...............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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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8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의 재차 반복되는 자신의 글쓰는 행위의 목적을 보며
나도 과연 요한처럼 분명한 목적을 두고 글을 쓰는 사람인가?
있다면 나의 기록행위는 목적은 무엇일까?
요한은 자신의 기록행위 목적이
1-아버지와 아들간의 사귐을 전함으로 우리 기쁨 충만케하려함
2-범죄 예방
3-사죄권 선포
4-영생 선포였는데(결론부분)
나도 허접스러운 모든 헛된 영광 버리고 요한처럼 순수한 하늘나라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무릇 글이 마음의 표현이라면........
내 맘 허잡한 모든 육질의 영광들을 버리고............
요한은 오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내게 안나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그게 지금 내게 어떠한 약효가 있다는 말인가?
18세기 초인가?
파리에서는 거북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유행이 있었다지요
영국의 산업혁명이 단초가 되여 급속하게 번지는
더 많이
더 빨리 제품들을 생산해야만 되는 속도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지식인들이 강아지대신 거북이를 데리고 할 수만 있으면 행보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는 이야기..............
지금은
18세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광속의 거리 사이버 공간안으로 쏟아져나오는 인파들.......
이러한 세상에 하나님 아들을 믿어 영생을 가진 나는 어떠한가?
나도 이 빠름을 거부하여 거북이 수십마리를 데리고 나이야가랴 폭포 그 앞에서
속도를 거부하는 시위라도 할 것인가?
내 안에 머무는 영생은 단연코 아니라 하네요
영생은 시간의 느리고 빠름에 휘둘리지 않는 초연함을 제게 심어주고 있다 하네요
사실
울 아빠도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처럼 사신다지요
모든 인생의 꽃은 영생이 아니면 필 수 없답니다
특히 택한 자들의 언약의 꽃은 더욱 더 그러하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언약이 있었다지요
그 언약이 만일 영생이 없었다면 어찌 꽃을 피웠을까요?
하여 지금 그가 산 자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온 세계 곳곳에 만개한 아브라함의 그 이름을 그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제게 주신 언약은 영생이 있어야만 만개하는 꽃이랍니다
영생이란 시간의 한계가 없는 무한대속에서 숙성되어져야만 필 수 있는 꽃................
그리하여 영생을 가진 제게는 모든 열망들이 영생이란 무한대의 무대로 올리워짐으로 인해
어떠한 속도이든 그 속도로부터 완연한 자유를 누리는 오늘 아침이네요
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담대함!
하나님의 심판 날일찌라도 그 앞에 담대함으로 설 수 있는 우리들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신
요한이 이제 또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가질 수 있는 담대함을 보여주네요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그가 듣는 다는 확신에서 오는 담대함............
내가 하는 기도보다
그분이 듣는 기도가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수만번 엎드린 기도로 맺혀진 인격!
기도로 내면화된 기도의 사람이 기도보다 더 중요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네요
마치 가인이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을 받지 않는 연고로 제사도 받지 않으셨던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제물이 양이 아니고 농사를 지은 식물이라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가 아니라
가인의 삶이 바르지 않아 제물을 흠향하시지 않으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동시에 세리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그는 비록 삶은 더러웠으나 자기에게는 한없이 솔직하여 아버지의 긍휼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절함에 드리던 통절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결국 요한이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란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에 촛점이 맞추어진
기도가 아닐까 싶네요
자비와 긍휼!
내가 자비와 긍휼을 입지 않으면 도무지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으로 구할 수가 있지요
어차피 내 의로는 되는 것도 아니요
나의 그 무엇으로 인하여 되는 것이 아닌 그분의 자비와 긍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나같은 죄인도 그분의 자비와 긍휼로 건짐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 더 건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그분이 들으셨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역경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들었다고 확신하는 그 순간 이미 구한 것을 얻었다는 확신때문입니다
왜 이런 확신이 드는지 난 알 수 없을지라도...........
든든하게 자리 잡혀지는 안정감과 강건함은
외부의 그 무엇이 해결되기 이전
주님을 믿게 된 그 날부터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내면의 빌딩이겠지요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요한은 두가지 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
여기서 요한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고 단호히
명하는 것을 봅니다
보거든
구하라!
오늘 이후
내게 보여지는 현상가운데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이 보여진다면
그 형제를 구하라고 주님께서 일부러 제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것을 적용해보네요
그러고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갖는 담대함은 형제 구원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마음이지요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간구하는 기도 중 하나가 형제를 구하는 기도라는 것!
성령님께서 오늘 제게 말씀해주시네요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요한은 죄의 심각성이 희소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거예요
그는 모든 불의가 죄라고 말해줌으로 죄를 지어도 좋다는 방심상태로
빠지는 것을 제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말함으로
설령 죄를 지었어도 주께로 향하여 담대히 나올 것을 권하고 있음을 봅니다
마치 탕자가 스스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이킨 것 처럼...........
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그전에 이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었답니다
어떻해 범죄치 않을까? 하고............
허나 성령의 지속적인 내주와 주님 말씀에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나와의 끊임없는
사귐속에 정말 범죄할 수 없는 한 속사람을 보게 되네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그 분이 살아서 날마다 매 순간마다
제 전신을 에덴 동산처럼 거니시는데...............
도무지 죄를 지을 수 없더라고요
물론
간혹 제 죄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다쳐도 그 자리에서 주저않아
용서를 빌 수 밖에 없는 나를 나도 어떻해 이해해야 좋을지............
헌데 오늘 요한이 주신 말씀이 저를 안아주고 있네요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무릇 안다고 생각한 것일수록
모르는 것이니라 주장했던 솔로몬-
근데 요한이 아는 것은 그런 앎이 아니네요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알게 된 지식은
고유한 절대적인 한 신격이였으며(하나님)
고유한 한 인격이였다는(그리스도) 것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모든 인생들이 저마다 자기가 안다고 자부하는 지식들을 다 쏟아놓아도
그곳엔 영생이 없는데............
요한은 자신의 모든 앎의 총체적인 귀결을 영생 으로 정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네요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이렇게 영생을 가진 제게 요한이 권합니다
아직 영생의 쾌적한 환경이 아닌 우상의 환경속에 살고 있으니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