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는 여호와의 도에 매달리는 나의 몸부림
(QT본문: 호세아 14장 1절 ~ 9절)
2012-06-23. 토요일.
[본문: 14장 1절 ~ 9절]
[관찰]
하나님은,
1) 당신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3)
2) 이슬과 같이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이시다. (5)
3)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7, 8)
이스라엘은,
1) 불의(sins)는 이스라엘의 파멸의 원인이었다. (1)
2) 하나님을 떠나면 의지할 곳 없는 고아와 같은 존재가 되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긍휼을 얻는 존재가 된다. (3)
이스라엘이 회개하면(고),
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를 그치시고,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의 반역하는 기질을 치유하시고, 자발적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실 것이다. (4)
2)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이슬을 먹고, 백합화와 같은 꽃을 피우며, 레바논 백향목과 같은 견고한 뿌리를 내리며, 올리브(감람) 나무같이 가지가 무성하겠고, 레바논 백향목처럼 향기를 낼 것이라. (5, 6)
3) 다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 것이며, 곡식같이, 포도나무같이, 포도주같이 그윽한 향기를 내며 풍성한 열매맺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7)
4) 하나님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8)
따라야 할 명령
1) 하나님께 회개하라(돌아오라) (return) (1)
2)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회개하라고 하신다. (2, 3)
(1) 모든 불의를 제하시며, 선한 마음을 받으소서
(2) 제물 대신 찬양의 제사를 드리리라
(3) 강대국(앗수르)도, 군사력(말)도, 다시는 만든 우상도 의지하지 아니하오리다 .
여호와의 도는,
1) 지혜가 있다 하여, 총명이 있다 하여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 흠잡을 데 없이 바르고, 옳다.
3) 의인은 그 길로 다니지만, 악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진다. (9)
[교훈 적용]
1. QT는 여호와의 도에 매달리는 나의 몸부림.
오늘 본문 8절은,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상을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의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 의지적 고백이 현실의 삶으로 이어져 단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지켜질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No”
왜 그런가?
하루에도 어떤 날에는 수도 없이 마음으로, 생각으로 죄를 짓고, 또 어떤 날에는 우상을 떠올리며, 이것만 있으면, 이 문제만 해결되면 다 잘될 것 같은데, 하며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상무관? 절대 자랑할 일 아니다.
고아와 같이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불쌍히 여겨줄 자가 없어 망하게 되는 인생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서 난 정말 “우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라고 누가 단언한다면 그는 짜가다, 교만한 자다, 곧 망할 수 밖에 없는 자다.
그래서 QT를 하는 것이다.
QT는 여호와의 도(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리는 나의 몸부림이다.
이것조차 하지 않으며 내가 어찌 최소한의 신앙이라도 유지한단 말인가?
눈만 뜨면 그때부터 나의 연약한 육신과, 마음과, 관계와, 물질 등을 통하여 죄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잠잘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해 오는데, 어찌 이를 다스리며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QT한다 자랑할 일도, QT일지 쓴다 교만떨 일도 아니다.
오직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매달리는 도리밖에는 없다.
오늘 그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
“호용아! 나는 너를 돌보는 하나님이니(I care for him), 네가 내 안에서 있어 풍성한 과실을 맺으라(your fruitfulness comes from me)!”
오, 주님! 제가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주님 말씀 안 듣고 탕자처럼 살았던 저였던걸요.
하지만, 오늘 주신 말씀에 이스라엘이 우상을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의지적 고백을 하였던 것처럼
저의 마음을 그 말씀에 담습니다.
이제 저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 주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생명을 얻되, 더 풍성이 얻는 열매맺는 인생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