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13:1-16
얼마전 잠간 친정의 죄를 나눔에 올리고 그 글에 작은 아이의 이틀 집나간 사건을
올려 혹시 자기에게 미리 귀뜸 없이 한 일로 예민한 십대 염려로 지운 적 잇있죠.
오늘 본격적으로 제 가족 신화가 온전히 그 진상을 드러내며 에브라임을 치고 치시길 원하셧던
하나님의 그 두려우심, 그 아프게하심, 그 아픈 진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역시 조금만 잘난거 같음 다~ 제 잘난 줄 아는 인간.그 별인생없는 흙덩이가 한번 주인 손에서
긍휼을 입어 구워지니 제법 윤기가 다르다고 높아지니 주인이 사망과 재앙 멸망을 불러오신 수 십년.
아버지께선 사변 때 전 가족을 잃고 마지막 하나 남은 막내동생의 강력한 주장을 거부하다 마지막 집안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설득에 부득이 홀로 호랑이가 돌출하는 험산을 넘어 죽음의 두려움 속에 천주교 신자로서
주님께 올린 서원이 " 가족 생명 다 버리고 홀로 이 위경에 남으니 살려 주시면 저처럼 전쟁 고아들과 살겠읍니다."
하나님은 살려주셨고 , 돌아온 후 땅 한 조각 없는 가난뱅이 고아 청년 ,부모 형제 잃은 피맺힌 한을 하모니커,
올갠, 밤중의 노래, 밤새 바다를 헤엄치며 건너는 것으로 달래고자했고.모여든 고아들과 보리밥 소금으로 연명하다
하나님 도우시니 , 아버지의 명분있는 뱃짱에 땅 얻어 엄마는 가축 키우고 불리고 고아들과 함께 돌로 지은
마을 한 켠의 작은 극장에 구해온 영사기 돌리던 이 젊은이가 마침내 돌극장이 헐리는 축복의 사건에 통곡소리
들으신 주님. 미국의 성결교 재단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고아들 구제가 시작되고 건물과 일체의 지원을 할테니
세례를 받고 교회를 내부에 세우며 예배를 드려라 !
이런 기적을 베푸시니 얼마나 큰 자비하심인가. 어린 시절 교회 다녔던 엄마는 하지만 그 많은 아이들 돌볼 일은
너무 부담였지만 두 분 셰례 받고 전도사님, 목사님 세우고 집과 강당겸 예배당 건축, 보모샘들과 일손들
집안이 커지고 바빠지던 기억, 우리 살 집과 극장도 건축되어 재물은 매일 차고 넘치고 온 그 땅에 명망 높아져
친형제 하나 없이 살아남은 젊은이에게 모든이가 고개 숙이고 인사드리고 가는 집이 되었고.
미국의 목사님들과 홀트회에서 노란 머리 여성들이 랜드로버를 타고 수시로 오던 기억.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고아원을 수 년 총무에게 맡기고 서울에서 사업하시던 아버지의 일이 조금 씩 소리가 나고.
고아원은 국가 시책으로 감축되어 고아는 흩어지고 어린이 집으로 명의 변경을 하려던 엄마는 이미 명의가
내부의 다른 명의으로 넘어간 것을 알게 되고. 강당 겸 예배당의 긴 나무 탁자, 음식이 배어 냄새가 나던
탁자가 사라지고 가장 아파하던 키 작은 전도사님은 얼마나 외치고 싶었을까? 돌아오라, 돌아오라
이사장님, 사모님은 예배에 돌아오라, 하나님께 무릎 꿇으라고! 어린 딸을 예배를 가르치라!고
암으로 돌아가셨다 들은 유전도사님. 그 검은 듯 잘 웃는 모습, 가난한 모습 기억합니다.
이제야 하늘에서 죄고백 받으세요!
물론 아버진 성격 칼칼해 배신한 자, 몰래 가져간 자들을 모두 내치진 않고 내심은 잇었으나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못난 딸을 통한 제사 금지 도전에 엄마의 반대에도 순종하셨지만 , 임종 한 두 해전 교회를 다시
출석하시나 세상 사단의 친구들이 왜그리 몰려들었던지 어둡던 집안. 교회만 잘 나가는 일 외엔 아버지 병환
수발은 고만하고싶던 철부지. 병석에 깜깜해진 시력을 허공에 두고 날 빨리 데려가시라 하시던 아버지에게
짜증만 나던 제가 이제야 어둠 속에서 끝까지 쟁변하시고 자백을 받으셨을 엄중한 시간였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 후 2ㅇ여년 엄마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으로 눈물로, 자식 염려 ,사랑으로 나올 눈물이 없이 쏟아버렸다
하셨고 동생과 엮인 우리집의 보증 사건, 유학 중이던 두 조카들이 형부 집의 부도를 맞아 각고를 겪어야하던 .
보증 이십년의 나의 노이로제 무기력증, 좌절 분노. 가는 교회들의 사모, 권세 텃세. ...이런 일들이 배불리니
하나님을 잊던 교만에 대한 심판의 연속이었던것이죠.길거리에서 덮치는 사자, 표범 , 새끼 잃은 곰의 습격은
반드시 이어졌고 심장이 아파도 남편에게 말하면 욕만 먹을 압박감.
수년 보증 빚을 정신없이 갚아가며 내게 분풀일 쏟아야만 했던 불안한 남편, 몇 년 째 수시로 실업을 겪다가
급기야 뇌경색 수술까지 해야하던 남편. 저는 그 와중에 김 양재 목사님의 설교 방송에 완전 중독, 마취되는 축복으로
좀씩 쫌씩 살아나 제법 돈벌러가는 적용도 해보고 짤리는 경험, 짧지 않은 백수 시절 그제야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
큐티인을 스스로 찾아보며 씩씩 웃는 남편 . 목사님의 간증을 적용해가며 남편과의 사막지대를 건너오고
언니들과 목사님의 팬이 되어 말씀 소감도 한 번씩 전하고 하나님을 잊는 죄, 자기를 높이기 시작하는 이 증세가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쌓았다 주시는지 보며 지금 나의 죄는 이 오랜 집안의 심판을 토설하지않는 것이라여겨
계속적인 죄고백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 잊지않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