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뜨~아 <***
작성자명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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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7
13~14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오늘 젊은 날의 일기장이 생각나 펼쳐보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 98년 12월 9일(수요일) ~~~~~~~~~~~~~~~
엊그제 000교회 주일4부 예배에서 000목사님의 뼈에 사무쳐야할 말씀이 있었다.
왜 인간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가운데 있어야만 하나님을 찾고 평탄한 삶 가운데에서는 하나님을 잊는가? 라는 인간의 중대한 고민을 털어 놓으셨다.
불과 1주전 나는 고민을 했었다.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몰랐다.
너무도 긴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세월속에 하나님을 잊고 죄 가운데 노출되어 살아왔다.
마음이 군급해졌다. 하나님께 바로서고 싶으나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탕자의 비유가 생각나 하나님께 무작정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악한 아주 악한 한 인간을 받아주시는 주님께 무한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2~3일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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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이 흘러 회사에서 철도전문대 실습생을 인솔하여 8호선 암사구간 (지하철건설본부로부터 인수하기 위한) 인수대비 점검(2,3일간)을 다녔다.
피곤했다. 집에오면 쓰러져 꿈나라에 여행가기 일쑤였다.
그리곤.....
감사하는 삶이 사라졌다.
그다음! 원래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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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아! ***********
*뜨아: 황당할때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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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날들속에 왜 이런 삶이 반복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면서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속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처럼 취급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엔 자기 뜻대로 모든 삶을 결정하고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드라이브하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살다가 어려운일이 닥치면 무릎꿇고 알라딘의 요술램프속 요정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아 어려운일을 해결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자가용에 예수님을 믿어 모시긴 했지만 뒷자리에 앉혀 놓았습니다.
목이 마릅니다.
삶이 건조해 졌습니다.
거기엔 기쁨이 없었습니다.
이런 삶은 차라리 죽느니 보다 못한 것이었습니다.
작심삼일
좋습니다.
작심삼일이 된다하더라도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 안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큐티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흘이 지났습니다.
회개가 있었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랑하지 못했던 아내를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적용을 하였습니다.
이제 작심삼일을 떨쳐버리고 싶습니다.
오늘로 나흘째입니다.
저는 내일도 큐티를 하고 출근 할라고 합니다.
하나님!
그동안 제 인생의 자가용에 운전대를 제가 쥐고 있고 예수님은 뒷자리에 앉혔습니다.
이제부터 운전석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제 인생을 이끌어 주옵소서
주님이 제 인생의 주님이 되실때
참 기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일도
그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지속적으로 매일매일의 삶속에
큐티와 기도시간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하루삶을 주님의 인도하심속에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