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없는 태초의 영, 그 성령을 이곳에 부우소서!
작성자명 [안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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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6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한은 아버지께서 아들도 주셨지만 또 주신 것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아들을 아버지께서 하늘로 올리워가신 후 그 아들의 빈자리를 메우고도 남을 수 있는
아들의 영을 보내주십니다
아들의 영
아들의 넋
아들의 혼
아들의 정신
그 모든 것을 총괄하는 그의 모든 것이 곧 그의 영으로 성령을 말합니다
주님 생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 당신이 가면 아버지께 구해 성령을 너희들에게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오면 지금은 너희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진리들을 그리고 당신자신에 관한 것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는가운데 알게 해주실 것이라고 또한 약속하셨습니다
요한은 바로 그 성령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으로 인하여 요한은 또 다시 주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육체의 몸으로써의 그는 분명 하늘 아버지께로 가고 없으나 이전보다 더욱 더 그로 충만하게
살 수 있게 된 요인은 바로 그가 보내주신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 하나를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내가 아버지와 아들안에 거하느냐
안 거하느냐입니다
내가 늘 태초의 부자지간안에 거하면 성령을 받은 것이요
그 부자지간과 관계없이 살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되는 것이지요
성령을 받도 안 받고를 어떤 초월적인 기사나 능력을 행하고 못함으로 분별하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기실 모든 것들이 회복된 그 상태에서 무슨 병을 고치겠으며
또한 그 무슨 절박한 절대절명의 처지로인한 기적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령의 본질은 아버지와 아들을 알아 그분들을 시인하고 그분과 함께 연합됨으로 세상으로부터 이탈된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데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 가면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불법을 행한 자야! 라는 주님의 호통을 듣게 되는 대상들이 있는데 그들 대개가
주님 이름으로 병고치고 마귀를 좇아냈으며 주님 이름으로 예언까지 했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했고 병도 고쳤으니 주님안에 거한 것이나 다름바 없는 것 아니냐며 주장하지만 울 주님은 그들과 함께 거하시지 않았다고 얼음보다 더 냉혹한 시선을 던지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아침이네요
그래서 요한은 분명 그 거함이 일방적인 거함이 아니요
쌍방거함이라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저는 여기서 요한의 시대적 사명을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것을 봅니다
요한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동정녀 마리아로 잉태된 주님을 직접 보았고 그와 함께 한 솥밥을 먹었으며
그의 마지막 한 숨결이 다하도록 십자가앞에서 그와 함께 있었다는 것과 그가 죽으며
부탁한 그의 어머님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로 모시고 살아야하 했던 그 시대를 겉돌아 살기엔
그가 너무 중심에 머물러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가 주님의 가슴팍에 기대여 살았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주님께서는 요한이 그의 몸을 당신께 누이면 주님께서는 그를 거절하지 않고 그를
그의 가슴에 안아주셨습니다
어허
저것들 호모 아니야?
저것들 레즈비언 아니야?
저것들 불륜 아니야?
얼마든지 입방아 들을 수 있는 구설수의 영들을 과감히 정면으로 돌파하며 나갈 수 있는 영!!!!!!!
누군가 내 가슴에 안길 때
스스럼없이 안아줄 수 있습니까?
남자든 여자든
어떠한 도덕이나 윤리를 초월한 오염없는 태초의 영, 즉 성령으로.........
그렇게 안아줄 수 있겠느냐?
오늘 주님께서 제게 요구하시는 질문입니다
요한은 그렇게 자기를 품어주신 주님을 증거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사명속에 살다간
사람입니다(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법정 증인의 수는 두세명의 복수를 요구하는데 요한은 그 증거함에 우리 라는 말로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고 증거합니다
저도 이 시대에 태어나 이 시대 중심인 하늘 보좌앞에 엎드려 살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시대를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
어떠한 난관이 올지라고 뚫고 나가리라는 것-
성령으로 인하여 그 부자지간의 의지에 기대어 다짐해봅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같이 쉬운 문장 쉬운 언어들인데............
요한이 하나같이 쉬우나 심오하기 그지없는 진리를 그 몸으로 터득하기 위해 걸린 세월은
어느만큼이였을까?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보통 사랑은 알 수 없지요
뭐라 딱히 정의도 안되고............
근데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사랑은 알고 믿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사랑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를 믿도록 하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밖에는 도리가 없네요
요한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믿었다 하지 않습니다
혹은 하나님은 창조주가 믿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땜시리 믿었다합니다
요한의 귀한 믿음의 고백이지요
사랑을 안다는 것
사랑해본 자만이 알 수 있지요
요한은 주님을 참 사랑했지요
사랑했기에 모든 제자들이 십자가상의 그를 떠났지만 그만은 끝까지 주님의 참혹한
죽음의 자리에 함께 동참할정도로.............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하는 사람만 옆에 있으면 든든하지요
제가 어제 교회 갔다 오는 길에 제 남편에게 한 말이 있어요
난 당신만 있으면 되요
물론 남편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 것은 절대 아니랍니다
심판을 하시는 이가 누구인가요?
사단인가요?
아네요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울 아빠가 심판주예요
근데 뭐가 두렵나요?
울 아빠 진노의 빛을 발하며 큰 함성을 치시며 우르릉 꽝꽝 세상과 악과 악인을 심판하실 때
너무 너무 멋있지요
제 남편 가장 멋있는 순간을 뽑으라면
그가 진노할 때입니다
제가 맏 며느리로 들어와 일년도 채 안되었을 때인데
집안 일로 한번 온통 시끌시끌한 순간이 있었답니다
그때 남편이 온 몸을 꼿꼿이 세우고
두 눈에선 옳고 그름의 기를 뿜어내느라 연신 이글 이글 타는 빛을 발하며
진노의 음성으로 온 사람들을 꾸짖는데 과히 일품이더라고요
저는 물론 그 모습을 보며 즐겼지만..................
예를 들려하니 어쩔 수 없이 제 남편을 들었는데 사전 양해를 구합니다
울 아빠 심판해주실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빠가 심판하시는 것을 보며 억겹동안 언챈 역사의 응얼이들이 풀리는 것을
느낄 것인데 뭐 그리 심판이 두렵겠습니까?
이게 제가 의로운 행위가 많아서일까요?
혹은 제가 죄없는 인생을 살아서일까요?
아네요
사랑은 내가 무엇을 해서 안심하는게 아니라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끊이없이 십자가의 보혈로 확인함으로
얻어지는 믿음의 결과랍니다
아니 어쩜 우리들교회가 그토록 많이 쓰는 믿음의 결론일 것입니다(제가 이 싸이트에 들어와 가장 많이 본 언어가 내 삶의 결론이라는 말이더군요. 김 양재 목사님 참으로 수고 많으신 것을 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 우리 대신 죽어주신 주님의 보혈을 사랑으로 알고 믿는
사람의 결론..............
그것은 담대함입니다
그 담대함이 어느정도이냐면 주님의 어떠하심과 같을정도입니다
유능한 선생은 유능한 제자를 낳습니다
주님의 보혈 능력 있어 주와같이 담대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성령안에서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가를 알기에
그 사랑으로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그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가령
내가 이 죄를 고백한다면 저들이 나를 어찌 생각할 것인가?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죄의 고백이 많은 곳일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들의 사랑이 충만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아직도 죄의 고백에 어설픈 것은 성도간의 사랑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는
증거이겠지요
허나 우리들 교회는 가히 예외적이네요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먼저 택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과 사춘격인 말씀 -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했다는 말씀-
참으로 내가 먼저 손내밀어 사랑해야할 이유이겠지요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
그의 위대함은
하나님 사랑을 형제 사랑으로 이루었다는 것이겠지요
그에게 가장 가까운 형제는 누구였을까?
미스테리?
아마 주님이였을 것입니다
주님이 물론 자기와는 본질적으로 달랐을지라고
그는 그 품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인성을 충분히 경험한 자로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의 어머니로 모시며
또한 그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로 모시며 주님을 형제와 다를바없이 생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그의 가장 가까운 형제 주님을 위해 수많은 환란과 인내를 통과했으며 종내는
그를 위해 아낌없이 생명을 준 자가 되었으니 형제 사랑을 이룬 자가 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