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들려주는 내 음란의 고백, 첫째 쪽
작성자명 [정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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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6
망설이고 또 망설이었으나,
제가 몹시 사랑하는 자매님들의
기도의 용기와 성령의 사죄와 고백하는 진실로
목장에서, 홈피 (church web-page) 에서
토설하는 그 분들 앞에
난 뭐 사낸데!
더 이상 흉물스럽게 입 닫고 있는
용렬한 인간으로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쯤 몰래 간직하고 있는
가장 뻔한 죄의 고백일 테지만,
술 한잔 마시거나 찜질방 에서나 덕담 삼아 나눌 얘기지,
공개적인
(더구나 크리스찬을 위한 온라인 에서, 그것도 실명으로 올리는)
오픈 감으로는 타부 (taboo)시 되어온 우리의 문화 속에서,
어떤 것은 오픈 해야만 하고
어떤 것은 오픈 해도 괜찮고
어떤 것은 차마 오픈할 수 없다 (도리어 은혜를 방해할 수 있다)는
암시적인 묵계를 깨뜨리는데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because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The one who fears is not made perfect in love.) 요일 4:18”
통역 집사하며
이 부장, 저 부장
헛 껍데기 신자 노릇하던 교회에서
몹시 따르던 여신도를 애인 삼았습니다.
우리말로 나누고
우리 몸짓으로 애교 떠니,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서
더욱 훔씬 훔씬 빠져 들었습니다.
말만 부부이지 남남이라는 그 여자의 말에
나 자신을 정당화 시키고 있던 중에
용산으로 전출 가는 한국계 미군 남편 따라
그 여자는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클라이언트를 (clients) 관리하라는 명목으로
강남 신사동에 사무실을 열어
그 여자를 실장으로 앉혔습니다.
타고난 나의 한국인 문화가
미국인 아내의 그것과
점점 멀어진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나 자신조차 감쪽같이 속여 놓으니,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연년생 노을이와 가을이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미국 쪽 일은 제 파트너 Bill 에게 맡겨두고
아예 서울에 들어와 눌러 붙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하는
두어 곳의 강남 호텔에 상주하며
그 여자와 놀아나는 재미에 흠뻑 취해
컨설팅일과 가르치는 일과 사무실 운영은
그렁 저렁 하는 시늉만 냈습니다.
서울에 여기 저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에게는
간혹 전화 몇 통 올려
욕 먹는 것만 면해 놓고,
미국에 있는 두 딸과 아내는 생각해보기도 싫었습니다.
스물 네 시간 기도하시고 찬송 부르시는 어머님과
그래도 장로이신 아버님이 옆에 안 계시니
교회 나가는 것 걱정 안 해도 되어
마음조차 편해졌습니다.
은근히 찜찜하긴 해서
그나마 곧잘 하던 재빠른 식 기도는
더 재빨리 눈만 감고 뜨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몇 달이 그렇게 지나고
심상치 않은 낌새를 직감으로 느끼며
가슴만 벌벌 떨고 있던 아내가
급한 일로 친정 집 갔다 온다며
애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맡겨두고
서울행 비행기를 집어 탔습니다.
그 여자가 금방 다녀간 호텔 방에서 받은 전화로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김포공항에 와 있답니다.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니, 왜 말도 없이 이 따위 짓 하느냐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어린애들 팽개치고 달려온 너는 도대체 어떤 에미냐고
적반하장 펄펄 뛰었습니다.
나는 너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되돌아 가던지
택시 집어 타고 누이 집으로 가서
내일 떠나던지 니 맘대로 하라고
고래고래 분을 내었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택시 운전사에게
그 미국여자 내려 놓을 위치를 전화로 설명해주고
나는 씩씩거리며
호텔 침대 위에 몸을 던졌습니다.
[이 고백을 올리는 중에는 댓글을 달아 주시더라도 일일히 답글을 못 올립니다. 이해 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고백 다 마치겠습니다. 끝도없이 만개하던 음란 마귀는 드디어 인터넷/채팅/블로깅 중독으로 까지 이어지며, 죽음 속에서도 피어나는 음란의 꽃 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고백의 끝까지 요동치 않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