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안에 거한다는 말의 신학적 의미
작성자명 [심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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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6
요일4:13-21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4:15)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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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 하나님,감사하나이다.
못난 이 종이 날마다 이와같이
주님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종이 뭐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주의 성령이 종과 함께 하시기때문입니다(4:13)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이 종 안에 거하시고, 이 종이 또한 주님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4:16b)
은총을 주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다
이런 것은 이방종교에서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우리 기독인들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다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옵니다.
주여 부족한 이 종이 그점을 말하고자 하옵니다.
많은 이방 종교의 구도자들이, 철학자들이 심지어 신학자들도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다는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이다. 하나님을 인간의 사유의 대상으로 만 간주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된다는 것은(4:16b)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어주신 아들을 믿기 때문이옵니다(4:15).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라가게 됩니다. 마치 태아가 엄마의 배속에서 엄마의 생명적인 사랑안에서 보호받고 자라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 것이 되옵니다(4:16).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평안을 가집니다. 근심 걱정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나와함께 동행하시니 결코 두려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도 그랬습니다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 근심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오늘 묵상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지 않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도 우리의 믿음에서 중요합니다. 사랑은 믿음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니깐 자꾸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 하고 관심을 끌고 싶어하고 또 사람을 의지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100%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 삶을 책임져주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없으니깐 자꾸 사람을 바라봅니다.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 주 하나님, 이 종이 믿음이 있노라고 했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참으로 한심한 믿음의 삶을 살았구나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염려와 두려움으로 세월을 보냈습니까?
오늘 묵상말씀 요일4:3-13 말씀은 참으로 중차대한 말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 속에 있는 두려움이 심판을 초래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4:18)
자기 마음속에 자꾸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니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즉 원초적으로 예수의 사랑을 모른다는 뜻이되고 맙니다.
이 예수의 사랑을 모르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4:20-21)
왜 우리가 주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제를 사랑하지 못합니까? 오늘 말씀에 사도요한이 또 형제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4:20)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지 못하면 형제를 사랑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됩니다.
오늘도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 고 간곡히 말씀하시는 우리 주 예수의 사랑의 초대의 말씀이 생각납니다(요15:9)! 역시 요한복음을 쓴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요일 4: 16에서도 언급하고있습니다. 어떻게 주의 사랑안에 거할 수 있나이까? 주의 사랑안에 거하려면 결국 주안에 거하여 합니다. 주안에 거하려면 주의 말씀이 내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내안에 거하려면 내 정욕과 내자랑을 버리고 주님의[나]에게로 나아가 그 안에 거하여 합니다. 끊임없이 내 자아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의 [자아]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로부터 출애굽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성령이 내안에 거합니다. 성령이 내안에 거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심을 깨달음으로, 오 주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주의 사랑안에 거하게 되옵니다. 나를 위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날마다 내삶속에서 깨닫게 될 때 비로서 내가 사람을 의지하거나 내 앞날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그 크신 사랑안에서 살게 되니 형제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오히려 내허물을 보게되고 내잘못을 보게 됩니다.
오, 오늘 이와같은 복음의 내용이 요일4:13-21에서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이 찬란한 복음 계시의 말씀을 이 종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이옵니다. 오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시옵니다(4:16). 진리는 사랑이옵니다.
진리는 단순히 어떤 철학적인 사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옵니다. 고로, 진리는 사랑입니다. 주 예수는 로고스[말씀/지혜/도]가 아닙니까. 절대진리가 아니옵니까. 그런데 절대진리는 절대사랑이옵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종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방황했나이까. 오 절대진리되신 예수여, 당신은 절대사랑이옵니다. 아니 우리들에게 절대사랑을 보여주시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4:16). 오 주여 이 종이 당신의 절대사랑안에 거하겠나이다(4:16). 모든 것을 주께 의지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살겠나이다. 오, 예수사랑,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