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회비용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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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5
2007-02-25 요한일서 (1 John) 4:1~4:12 ‘사랑의 기회비용’
남편의 새 차를 운전하다가 접촉 사고를 낸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혼날 것을 걱정하며 꺼낸 보험 서류의 맨 앞 장에 끼워진
낯익은 남편의 메모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여보, 만약 사고를 냈을 경우에 꼭 기억하구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차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실을“
퍼온 글이기는 하지만 남편의 사랑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어떤 보험사의 광고 카피 중에 “보험은 사랑입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보험의 속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임에 틀림없는데 진짜 사랑은 안 보인다.
그 회사가 요즘 ‘본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가족의 경제적 위험을 해결해주는 자산’을
뜻하는 ‘보장 자산’을 들고 나왔는데,
가족을 위해 미리 대처할 가장 중요한 일이 과연 경제적 위험 뿐일까?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을 멀리 하고 아내의 눈총을 받아가며
말씀 묵상과 양육에 매달리느라 친구와의 교제, 아내와의 세상적인 휴식을
포기하는 일이 나만의 유익을 위한 이기심에 근거한 것은 아닐까?
오늘 본문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를 묵상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도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처럼 세상 사랑은 품앗이의 속성이 있지만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베푸시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고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모두의 마음속에 거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 사랑을 알지 못했다.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며 사랑을 외식한 죄로
늦었지만 사랑을 배우느라,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깨닫느라
진작에 치렀어야 할 시간을 30년으로 늘리고 말았다.
그런데 30년이 별로 아깝지 않은 것은,
유레카를 외친 어떤 과학자처럼
머리를 쥐어짠 평생의 연구 성과로 그 사랑을 발견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냥 나에게 찾아오심으로 그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1 년밖에 안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 요즈음
나에게 우상이었던 세상의 30년이 시시껍적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