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신종 스트레스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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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4
2007-02-24 요한일서 (1 John) 3:11~3:24 아내의 신종 스트레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동기는 순수했고 과정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나쁜 것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라는 착각 속에 살다가
말씀을 접하고 큐티를 열심히 하면서
모든 게 내 삶의 결론이라는 목사님 말씀에
가장 먼저 깨달은 게 나의 강퍅이다.
나는 참 강퍅하여 사랑도 내 방식대로만 하며 살아왔다.
사랑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원래의 성격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상은 나와 내 가족에게 한정되었고
생색내고 싶을 때만 조금 꺼내는 게 내 사랑이었다.
모든 갈등의 근원은 “내 사랑에 대한 너의 반응은 왜 그 모양이냐?”였다.
가족에 대한 내 사랑의 열심은 정말 갸륵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내 열심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 20 년간의 사기극이었다고 생각된다.
주는 사랑도 내 맘 대로였고 받는 이의 반응도 내 마음에 들어야 했다.
애들과는 상하 관계가 분명하니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아내는 변화무쌍한 내 말과 혀를 보면서 짧은 평안 긴 스트레스의 세월을 살아왔다.
나이가 들어 변하긴 변했는데,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고약하게 변했단다.
세상의 거친 언어를 쏟아내던 입에서 갑자기 고상한 말씀이 나오니
이제 내놓고 불평도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권면이 아니라 강요로 느껴지니
늑대 피하려다 호랭이 만난 격이라나...
아내와 큐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 이제는 아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는데
분위기나 내용 면에서는 나아지는 게 없어 큐티라는 말이 점점 무색해져 가고 있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항상 새벽에 무엇인가를 하였는데
얼마 전까지는 가족의 식사 준비로 몸이 바빴고 요즘은 큐티하느라 머리가 바빠졌다.
나보다 늘 늦게 일어나는 아내와의 인사는 거의 등으로 하는데
어제 아침에 당황스런 일을 경험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나를 보는 싸늘한 아내의 눈빛에, 사랑의 멘트는 고사하고 미소도 짓지 못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말씀 말씀하는 내가, 고시 공부하듯 말씀 보는 내가 싫단다.
강퍅한 말을 쏟아낼 때는 잠깐 기분 나빴는데 고상한 말씀으로
사랑인지 핍박인지 분간이 안 되는 훈계를 하니 은근히 기분이 나쁘단다.
늦은 식사를 함께 하며 맥주라도 한 잔씩 나누던 행복은 말씀에 빼앗겼고
이제는 밥도 잘 챙겨주지 않고, 먹거나 말거나 컴퓨터 앞으로 가는 내게
딱히 시비 걸 건덕지도 없고.. 큐티가 아내에게는 신종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게 한 번 빠지면 올인하는 성격, 모든 게 내 맘 대로여야 하고,
나는 항상 옳고, 내 생색에 항상 감사하기를 강요하며 살아온 내 삶의 결론임을,
변하긴 했어도 여전히 진실함이 없는 내 열심의 결론임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