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이후
주님이 저를 이모양 저모양으로 세상에서 뽑아내시더니 혹독한
신앙 훈련을 시키신 후에야 2006년에 신학을 시키셨습니다.
저는 신학교라는 곳이 다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과는 담쌓고 사는 거룩한 성이려니
생각하고 그곳을 생쥐처럼 조심스레 기웃거렸던 지난 1년의 시간들이였습니다.
신대원에 들어가자 마자 주님은 나의 수준을 약간 높게 쳐주셔서
약간 쎈 것으로 저에게 시험(?) 하셨습니다.
주님은 신대원에 오기 전에 재판이란 약재료로 3년여 기간을 탕 끓듯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시더니, 입학하자 마자 약간 쎈^^ 시험을 주셨습니다.
나는 신대원에 입학하여 여전히 가난하였기에
무슨 무슨 제목을 걸고 데모하는 신학생과 교수들의 대집단에 끼여
외칠 여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데모 할 수 있는 그들의 이생의 정욕과도
같은 여유로움(?)이 부럽기까지...
뭇 학생들이 등록을 하지말고 학교를 상대로 투쟁(?) 할 것을
외쳤지만 나는 결코 그러한 사치스러움에 동참 할 수가 없었던 못난 생쥐가 되어
등록을 하였고... 그 결과 제적이나 직권휴학이라는 커다란 환란(?)을 면케 하셨던 분은
가난을 선물로 주신 주님이 일등 공신이라 감히 고백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의 이등 공신은 우리들교회를 만났던 경험이라고
목청 돋구어 말할 수 있습니다. 김양재 목사님 화이팅~~
문제가 터졌을 때 남의 눈의 티끌 대신 내 눈의 들보를 보는
훈련을 거쳤기에 시험의 강을 무난히 건널 수가 있었지요^^;
(귓속말- 사실은 남들에게는 힘겨운 시험꺼리였겟지만, 나에겐... )
작년에 한참 학교사태가 텨져서 학교가 약탕기처럼 부글부글 끓을 때도
나는 식은 죽같이 냉냉히 대처 할 수 있었던 것은 - 너의 죄 대신에 나의 죄
를 보는 신앙의 기초훈련을 우리들공동체에서 거친 덕택인 셈이지요.
우리들교회의 큐티와 말씀을 통해 사건 앞에서 해석하는 능력이 생기려고 할 무렵,
눈 뜨자마자 큐티부터 하라시던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 중의 말씀을 뒤로 하고
밤새 학교 사태의 정황이 몸서리치게 궁금하여 신대원 홈페이지에 눈도장을
찍었야 했던 지난 시간들을 오늘 말씀을 통해 육신의 정욕에 이끌림이었노라고
반성시키십니다.
반성문 끄읏 !!
피에쑤~
저 위에 있는 저의 홈페이지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김양재 목사님이 그리도 싫어하시는(?) 전철전도와 함께 저의
2006년 한해 동안의 전도활동 동영상 입니다. 감상하세요~
위에 클릭!! 하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