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
작성자명 [박종열]
댓글 0
날짜 2007.02.20
2007-02-20 요한일서 (1 John) 2:1~2:11 ‘거리낌’
탈옥수 신창원이 잡혀서 한 말 중,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있었으면
오늘날 탈옥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에 가슴이 짠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비록 말썽을 부려도 네가 착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격려가 있었다면
그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큐티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두 번째 양육의 과제가 계기인데
수동적으로 하던 과제에서 일상의 기쁜 일이 되기 시작한 건
그 양육 과정이 끝나가던 어느 주일 날 목사님이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눔 잘 보고 있어요. 계속 올리세요”
창립 예배에도 참석했으니 온 순서로 하면 고참인데 이리뺀질 저리뺀질하다가
뒤늦게 양육에 참가했고 과제 중 하나인 설교요약을 위해 설교에 집중 하다보니
말씀이 점점 깨달아지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늘어 가는데
요즘, 들으면 찔림이 되는 말씀이 있으니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씀이다.
그 말씀이 마치 목사님이 내 안의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는데
오늘은 “내가 이 말을 너에게 함은 너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로 들린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모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씀을 묵상하며, 과연 내가 빛 가운데 거하여 나 자신 하나님 앞에 거리낌이 없고
남에게 거리낌의 대상이 되지 않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내가 목장으로 인도한 중국 동포 형제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았다.
연휴 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는데 막상 쉬다 보니 더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내 건강을 위해 이틀 간 금식하며 장을 비웠는데 혹시 술 유혹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요즘 애들 표현으로, 전화를 씹었다.
얼마 전, 목장 자매의 고난에 대한 중보기도를 부탁한 어떤 목자님의 글에
가명으로 리플을 단 적이 있다. 체휼하는 마음보다 정죄하는 마음이 앞서는데
외식으로 위로하기는 싫고 그냥 넘어가자니 내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내 믿음의 분량만큼 위로나 체휼도, 정죄도 아닌 의견을 적었는데
최소한 나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음을 생각하곤 나에게 또 한번 실망했다.
어제 아내가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길래 사양했더니 딸과 함께 보고 와서
당신 요즘 참 많이 변했다는 칭찬으로 운을 떼고는 자기들만 보고 온 것을 미안해하길래
기분이 좋아지고 교만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에, 보고 온 영화가
“바람피기 좋은 날”이라는 영화임을 알고 얼른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하필 왜 그런 영화를.....그저 아내가 고마웠다.
오늘 본문을 통해, 내가 빛 가운데 거한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남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은 나의 외식 때문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여전히 어두움에 거하는 영적 편식과 영적 소경의 상태에서 에서 빨리 벗어나
하나님과 형제들 앞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거리낌 없는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