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하나님/미가서 1.
반듯한 아이를 보면 그 부모가 보고 싶어진다.
대체 어떤 분들이기에 자식이 저리 자랏을까 싶은 게다.
날 보고 사람들이 어떤 하늘 아버지를 떠올릴까 생각할수록
내 자식 키우는 게 두려워진다.
하얀 도화지 같은 이녀석이 본 그대로 따라하고 들은 그대로 그려 넣을텐데,
과연 내 사는 모습을 보고 내 아들이 하늘 아버지께서 보이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삶이 자기 전부를 걸어야 할 만큼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게 될까
자문하니,순간 가슴이 내려앉는다.
2.
하나님 이름의 영광과 그분 나라 백성됨의 영광이, 유명한 아파트 브랜드나 일류대학
학위나 선망하는 대기업의 영광에 비하면 헐거워 보이는 이 시대를 너무 불편하지 않게
살고있는,나는 초초하다.
하나님의 이름 보다는 교회나 교회 지도자의 이름이 더 유명하고 더 소문나고
더 대접받는 것을 보면서도,
내 자존심이 상하고 내 밥그릇이 위협받을때보다 덜 서운하고 덜 속 쓰리는,
나는 위태롭다.
남들이 날 알봐 주고 그래서 차별대우 해주길 바라면서 고개를 쳐들고 발꿈치를 들고
사는 동안,부당한 권력이 드리운 차별과 소외의 그늘 아래서 신음하는 이들과
그들에게 폭력을 들이대는 이들의 이중적인 얼굴을 보고도,
분노를 행동으로 옮길때 내가 치러야하는 대가를 알기에,의롭지만 너무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안 줄 만큼만 그들의 허위를 폭로하고 배설하듯 욕하고 끝나는,
나는 비겁하다.
그런 아비니 자식 키우기 두렵고 설교는 버겁다.
내가 이렇듯 하챦은 아성을 쌓는동안,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 당하고 그분의 영광스런 나라는 미국 시민권 보다 헐값으로 매겨지고,
그 분의 사랑과 은혜는 진부한 관용어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3.
마음 아프지만 인정할 것이 있다.
세상은 지금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을 향해,구원의 하나님을 차냥하는
교회를 향해,하나님 아들처럼 섬기는 종이되어 사랑하라고 외치는 지도자들을 향해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있느냐? 고 묻는다.
그들은 더는 교회 건물이나 교인 숫자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비아냥거린다.
들을 귀 없으니 그런다고 건성으로 듣지 말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허접하게 대접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나님이 숱한 내 관심사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가 필요할 때만 호출당하는 사환으로
전략했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세상이 하나님을 만만하게 보게 된 것은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했기 때문은 아닌가?
그렇다.내 탓이다.
내게 초라해진 하나님을 세상은 극진히 대접하고 인정하길 기대했으니,
난 지나치게 믿음이 좋았던 거다.
그러니 멸망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 미가 선지자가 던진
이 매서운 질문들을 지금 우리도 들어야 한다.
출처:SU/박대영

4.
악한 일에 착념하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결국 악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난 한 주간 또 뜬 구름 잡듯 시간을 탕진해 버린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깊은 어둠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빛 가운데 나아가는 은혜를 주시고
주의 자비의 얼굴을 구하오니 이 백성과 사회의 죄를 사하소서.
오 주여,
비록 하나님나라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기다리는 것 자체가
구원의 일부인 것을 믿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2007.2.17/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