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서사시, 악마의 관현악 (미가 7:1-6)
작성자명 [정우석]
댓글 0
날짜 2007.02.16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What misery is mine! I am like one who gathers summer fruit at the gleaning of the vineyard; there is no cluster of grapes to eat, none of the early figs that I crave. The godly have been swept from the land; not one upright man remains. All men lie in wait to shed blood; each hunts his brother with a net.) 미가 7:1-2”
2006년 1월 21일
전날 밤, 집에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아무도 받질 않았다.
가을이를 휴대폰으로 불러도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거기 시간으로) 자정쯤에서야 겨우 통화가 된 아이의 목소리가 몹시 풀려있고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 하여 따져 물었더니,
이렇게 저렇게 얼버무리는 것이
지난 여름, 그 아이의 고발로
가족 폭행죄로 잡혀 들어가던 날 아침에
뻔뻔스레 거짓말 하던 태도와 어쩌면 그리 똑같았다.
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대고 말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시 심한 욕까지 퍼부었을 것이다.
(평생 욕하는 귀신을 붙이고 살아왔다.
영어로 욕을 하면 그리 흉하게 들리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내뱉는 말에 음률과 힘이 붙는 듯싶어
애들에게 욕하면 밟아 없애버리겠다고 욕을 해댔었다.
요즘엔 그 잘하던 욕이 전혀 나오질 않는다.
혼잣말로라도 욕지거리 한마디 내뱉을라치면
당장 가슴이 뜨끔거려 못하겠다.
어느 TV 목사님이 우스갯소리로 욕 한마디 하면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늘 나긋나긋한 아인데
궁지에만 몰리면 술 취한 생쥐 꼴이 되는 아이였다.
소리 지르는 나에게 성질을 바락 냈다.
휴대폰을 치켜들고 아빌 고발하던 그날 아침에도 그랬다.
언성을 점점 높이며 대들었다.
나는 분이 머리통 끝까지 치밀어 전활 냅다 끊어버렸다.
[가을이의 이메일]
아빠가 보낸 이메일 다 읽어봤어요.
왜 열어보지 않은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 며칠 내가 보낸 이메일을 하나도 열어보지 않고 있어서
어제 통화할 때 난리를 쳤었다.)
어젯밤에 죄송했어요, 아빠.
요새 내가 학교 공부 땜에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아 그랬나 봐요.
아빠 화를 풀어드리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줄을 몰랐어요…
아빠도 거기서 가르치시느라 힘이 너무 드시는 것 같아요.
휴대폰 카드를 충전시키지 않아서
아빠가 전화해도 못 받을지 모르니 화 내지 마세요.
어젯밤엔 정말 죄송했어요, 아빠. 학교에서 너무 피곤해요…
화학 시간에 들이키는 가스 때문에
제 컨디션이 나빠졌는지도 모르겠어요… 다시 쓸게요.
_ 가을이가
(이메일 쓴 억양 (tone)이 갑자기 달라져 있었다.)
가을아 (이메일 보내줘서) 너무 고맙구나.
나 지금 강의하러 서둘러 나가야 하니까
나중에 더 써서 보낼게.
고마워, 정말 고맙다… 스윗 하트…
- 아빠가
2006년 1월 22일
(그러나 어제 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전화는 계속 불통이었다.)
나 어제 밤에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왔어.
(몹시 아팠던 것은 사실이지만 병원엔 가지 않았었다.)
밤새 아파 죽는 줄만 알았어. 하지만, 오늘 아침엔 훨씬 낫구나.
오늘 KTX 타고 대전 내려갔다가 밤차로 돌아오면
서울서 이틀 동안 강의 마라톤 해야 되는데
내 건강이 빨리 좀 좋아졌으면 좋겠구나.
내가 지금 외롭고, 무인도에 있는 듯 허전하고, 절망적인 생각만 드는구나.
외로움이 제일 견디기 힘 들어.
요 며칠간 네 엄마하고 마을이가 날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내가 너희들 마음만 무겁게 하고 잘해주는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아.
여기 노을이도 (영어 캠프 가르치러) 떠나고 없어.
갑자기 온 세계가 나를 떠나 버린 듯 하구나, 가을아.
그리고 그 세계가 내게 다시는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듯해.
도대체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모르겠구나.
너 할 일도 무지 많을 텐데
아빠가 바보처럼 넋두리를 늘어 놔서 미안하다, 가을아.
이젠 입다물고 대전으로 떠나야겠다.
난 너 사랑한다, 아이야. 잊지 마라, 알았지?
_ 아빠가
2006년 1월 23일
아빠, 마음을 좀 추스르셔 야겠네요.
자꾸만 그렇게 약한 소리만 하시면 안 되잖아요?
굳건해지셔야지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의사한테 가보세요.
정신과 의사한테 좀 가봐요.
- 가을이가
.
.
.
.
.
.
.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들과의 연락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날 밤 10시 30분에
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혼하자 했다.
그저 멍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알코올 중독자,
치료 받기를 거부하여 한국으로 달아난
정신병 중증환자가 되어 있었다.
엄청난 음모와
그보다 큰 배반이
악마의 웃음을 머금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
.
.
.
.
.
.
2006년 1월 24일
가을아, 내 보석 같은 가을아. 너 날 안 도와 줄래?
뭐가 어찌 돼가는지 알 수가 없지만
난, 너나 마을이나 노을이, 네 엄마 없인 살 수 없어.
넌 내가 죽는 걸 보고 싶니?
그게 네가 원하는 거니?
가을아, 제발 말좀해봐.
나하고 얘기좀해, 소리 절대 안 지를게.
제발, 너한테 애원한다… 제발.
- 아빠가
.
.
.
.
.
.
.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Both hands are skilled in doing evil; the ruler demands gifts, the judge accepts bribes, the powerful dictate what they desire- they all conspire together. The best of them is like a brier, the most upright worse than a thorn hedge. The day of your watchmen has come, the day God visits you. Now is the time of their confusion.) 미가 7:3-4”
허공을 치는 메아리였을 뿐이었다.
현란한 악마의 관현악!
그 지휘자는
내 목숨보다도 더 귀한
큰 딸 노을이었다.
동생과 엄마를 부추겨
몇 달 동안 서로
은밀히 연락을 취하면서
배반의 서사시를 써 내려온
스물 두 살짜리 노을이가
서른 세 살짜리 “버클리 (Berkeley)” 사내놈과
대폿집에 나란히 앉아
두 손을 머리위로 요염하게 올리고
(마이스페이스 등의) 인터넷 곳곳에서
나를 맘껏 조롱하는 한 장의 사진을 바라다 보며 나는
컴퓨터 코드에 목을 감았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Do not trust a neighbor; put no confidence in a friend. Even with her who lies in your embrace be careful of your words. For a son dishonors his father, a daughter rises up against her mother, a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a man s enemies are the members of his own household.) 미가 7:5-6”
****둘째 딸 가을이와 주고 받은 이메일 대화를 바탕으로 쓴 이 간증문의 전반부 (현재형으로 마구 치시는 주님!)와 대화 내용 원문 (12월18일-1월24일)을 수요일 ‘QT나눔’으로 올렸더랬습니다. 간증문 후반부를 곧 쓰긴 하였으나 나눔에 올릴 용기가 나질 않아서 제쳐 두었습니다. 자정이 지났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아 금요일 QT를 시작하다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미가서 본문은 이미 제가 써놓은 간증문을 순서도 그대로 말씀해 주시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