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역대상 29장 9절말씀.
우리들교회 주일예배를 처음드리던 날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체포조처럼 달려와
처음오셨죠? 하며 그 많은 사람중에 새신자를 알아 보는 대단한 안내특공대원들이었다.
수요예배는 등록하기전부터 왔어도 너도 낯설고 나도 낯선것같이 서로를 안 본척 드나들기 좋았다.
분당을 가도 휘문을 가도....
그렇지만 주일예배는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알고 선물안겨주고 이름만 적어 달라고 하더니
목사님이 이름불러주고 축복해 주고 목사님이랑 사진찍고...목장안내까정 후다닥이 놀라웠다.
그 다음주부터 체포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니 샘나는 것은 양쪽에 찾아 가게 되어 있는
선교헌금봉투등이다. 봉투를 찾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들 가족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목장에서고 양육을 받으면서도 물어 보지 않는 다.
선교헌금은 어떻게 하는 것이고 건축헌금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교회를 다닌 게 얼마인데 물어 봐야 헌금하니?)내 속에선 하지만
신앙의고백이란 말씀에 회개하고 십일조하는 적용은 했으면서 말이다.
즐거이 드림에 걸리고 찔리는 것이 무엇인가?
어머니의 건축헌금이 기억난다.
둘째아이를 낳고 맞벌이 하는 우리부부를 위해 어머니가 손주들 양육 하시려
올라오게 되었고 시골집을 팔게 되었다.
그 때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물질은 아쉬움없이 없었다. 아니 풍족했다.
그렇지만 집 판 돈 얼마만이라도 주시면 결혼할 때 빚으로 시작한 체면을
살릴 수 있겠는 데 하는 게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 남은 재산 이다 하나님께 드린다 하시고는
몽~~땅 시골교회 성전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상의 안 했다고 섭섭해하는 아들의 쪼잔함은 기복적이었다.
잘 먹고 잘 살때는 우리엄마가 드린 믿음으로 복 받은 겨 했었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내 인생에 물질의 고난으로 믿음을 키우실 때
즐거이 드리던 첫 사랑을 버리고 지금은 조금만 참으세요? 다 아시잖아요 하며
드림의 기쁨을 절제하고 아간의 죄악을 누리며
엄마에게도 속 상하고 하나님께 기분나빠했던 악한 나를 알고는 벌레처럼 엎드려 웁니다.
주님 잘 못 했습니다. 정말 잘 못 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