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올 기특한 열심을 낸다. 그러나 아뿔사.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언약궤를 운반하던 웃사를 하나님이 그자리에서 죽여버리신것이다. 이일로 인하여 다윗은, 또 성경을 통해 이일을 듣게된 우리들은 두고 두고 잊지 않아야할 중요한 교훈을 얻게되었다. 그날의 장면을 떠올려보자.
웃사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70년이나 모시고 있었던 아비나답의 아들이다. 바야흐로 왕이 온 백성을 거느리고 자신에게 나아와 그는 자신이 모셨던 언약궤를 그들앞에서 보란듯이 (아마도 인간적인 명예욕이 부글거렸을것 같다) 운반하게된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블레셋의 방법으로! 보기에도 폼이 나는 새수레에 언약궤를 싣고서 비파와 수금으로 주악을 울려가며 그들은 기뻐 뛰놀았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한 그들의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부분에서 나는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눈치채게 된다. 또한 나역시 똑같은 그 죄를 수도 없이 반복했슴을 알게된다.
신앙의 연조가 길면 길수록 우리는 아무생각없이 너무나 쉽게 웃사의 길을 가게되는것 같다. 하나님의 계명을 젖혀놓고 세상적인 방법 혹은 우리가 고안해낸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그것은 예수님이 그렇게도 싫어하셨던 바리새인들의 진면목이다. 하나님의 계명 은 없고 온갖 예배와 형식과 자신의 의만이 있을뿐이다.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웃사는 절대절명의 실수를 하고 만다. 언약궤가 흔들리자 손을 펴서 궤를 붙든것이다. 예전에 같은 본문으로 목사님이 설교하신적이 있다. 이 설교를 하시며 그당시 블레셋의 수레 의높이. 언약궤의 높이까지 일일이 재현하여 웃사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한적이 있는데 그 한 장면으로 이 사건의 본질이 그냥 파악되었었다. 웃사는 허리춤 정도 있는 언약궤위에 지그시 손을 뻗어 궤를 고정시킨것이다. 마치 언약궤의 주인인양. 바로 하나님보다 높이있는 그가 문제였다. 그자리가 베레스 웃사. 베레스는 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안에 있는 웃사를 베레스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수 없다. 아무리 온갖 예배를 다 참석해도, 헌금을 많이 해도, 봉사를 몸이 부서져라 한다해도 우리안에 웃사가 살아있는한 우리는 그 타작마당옆 바로 하나님의 궤옆에서 죽을 운명인것이다.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목회자들이 이 죄를 범하고 있을까. 너무 무섭다. 웃사. 웃사여.
나역시 작은 교회를 오래도록 섬기다 보니 이런저런 책임을 맡게되고 때로는 리더의 역할을 감당해야할때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때 절대 하나님을 앞서지 않아야 할것과 명심할일은 우리는 절대 성령을 속일수 없다는 것인것 같다.
내안에 있는 웃사는 죽을지어다. 베레스 웃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