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13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11)
다윗이 "화"를 냈다고 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화를 낼 수 있을까?
하나님에게 화를 내는 것은 물론 원망, 불평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왔기에 이 점이 잘 이해가 안 된다.
목사님들이 설교하실 때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내가 읽기에는 아직도 욥이 푸념하고 불평하는 것처럼 읽힌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욥의 무력감과 한탄이 다소 이해가 되기는 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것 같다.
다윗이 화를 냈는데도, 웃사나,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가차없는 죽임을 당하지 아니 한 차별에 대해
하나님과 다윗이 참으로 친밀한 관계 였다라고 이해하면 안심이 된다.
웃사는 모세의 율법을 통해 법궤를 어떻게 운반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과거 블레셋 사람들이 수레에 법궤를 실어 보내었더도 아무 문제 없었음을 보고
자신의 생각대로 법궤를 운반하려 하였으며 소들이 뛰자 반사적으로 법궤를 보호하려 손을 대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닌 종교적 행위로서 죽은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던 것에 노여움을 받은 것인가.
다시말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법궤로서가 아닌 그냥 고귀한 물건으로 생각해서 였을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의 아비(or 할아버지아)인 아비나납의 집에 7-80년 동안 블레셋으로 부터
돌려받은 법궤가 "안치" 되어 있었지만 아무런 사건이 없었기에
법궤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 것 같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히 화를 냈지만 죽지 않았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소통하여서 였을까.
블레셋 사람들 역시 법궤를 젖먹이지 않은 어미 소의 수레에 실었지만 무사했다.
하나님은 불신자에게는 관대하시고 우리 믿는 자에게는 더 엄한 스탠다드를 요구하시는 것 같다.
그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곳으로 오게 하리오 (12)
다윗은 법궤를 옮겨 기대감에 들뜬 나머지 법궤 운반시에 지켜야 할 규례를 어기고 말았다.
신정국가로 견고히 서고자 종교적 표상인 법궤를 에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그의 열심은 이 사건으로 인해 한차례 큰 신앙적 연단을 거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과연 하나님의 궤를 옮길 적격자인지 회의가 들었지만
그 후 자신의 과오가 무엇인지 깨닫고 다시 용기를 내어 법궤를 옮겨오는데 성공한다.
일전에 이동원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는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앞서갈 때 실패를 여러번 경험했음을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일이 추진될 때 교회가 시험에 빠져 충격을 받고 분열을 일으키는
경우를 여러번 봐왔다. 오늘날 교회의 사업이나 개인의 일이나 마찬 가지이다.
큰 교회 목사님도 그런 고백을 하시는 데 하물며 나는 어떠하겠는가.
사실 나는 의아해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나야 말로 하나님께 기도 먼저 하고 일을 한 적이 몇번이나 되겠나. 손꼽을 정도 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겪지 않아도 될 여러 험난함과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길을 구비구비 돌아 왔다.
다윗이 베레스 웃사의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고 하나님의 경외로움을 깨달았던 것 처럼,
나도 역경이 있을 때 그 원인이 내게 있음을 깨달아 회개하여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한다면 많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이 생에서의 삶은 오직 주만 바라보고 전진하기를 바란다.
주님! 이사건의 다윗과 웃사가 바로 저였습니다. 구약때 였다면 수만번도 더 죽어 마땅했을 저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저의 모든 죄를 사하사 기억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도록 늘 먼저 묻고 기다리며 나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하옵나니
그 거룩한 습관에 익숙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