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막11:12~26 제가 신혼초기에 아내와 싸우고 갈 데가 없어서
종종 새벽에 동네 교회를 기웃거린 적이 있었는데
지역교회 열 군데 중에 예닐곱 군데는 문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분명히 머릿돌에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고 쓰여져 있는 예배당이었는데도
행여 기도하러 올까봐 철통같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그때의 상실감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서
제가 행여 새벽기도라도 할라치면 문을 열었는지 부터 확인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광고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멋있는 광고를 보면 더 강력한 구매 욕구를 느끼듯이
허위의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현란한 수사로 추한 내용을 장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당장 나부터 잘 나가는 연예인이 선전하는 명품을 구입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화려한 수사의 옷과 그 속의 추한 거짓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전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알곡과 가라 지를 가려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불시에 방문하셨습니다.
허위로 가득 찬 자기 만족의 종교를 향해 채찍을 드시려고 찾아오셨고
그들의 공허한 찬양과 기도와 성경 읽는 소리와 수많은 제물과 성전세 이면에 있는
구린내 나는 마음 구석구석을 살피시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잘 되어 가고 있다고 믿어버리기로 작정한 우리 시대를
시찰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성전(이방인의 뜰)을 매매장소로 사용한 장사치들을 둘러 업으셨습니다.
마이어(Meyer, Aims, 170.)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울 주님께서 결코 홧김에 한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고
성전으로 죽기위해 자초한 의도적인 도전이라고,
껍데기는 가라 /신 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런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주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거짓과 위선으로 번지르한
내 모습을 호되게 꾸짖기 위해 오신 주번 사령관의 시찰인줄로 압니다.
주님 제가 종교라는 이름을 빌어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않게 하시고
기득권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부인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 주여 내가 속히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하여
성전이 되게 하시고 내 집이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옵소서.
2007.2.7/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