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러웠던 내 이웃집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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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01
마가복음10장1절-12절 [탐스러웠던 내 이웃집] 2007/02/01
세상에서 일반으로 행하는
옛것이던 새것이던
더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바꾸던지
그것이 안 되면 고치던지 합니다.
최근 저의 주변에
74평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팔천이라는 돈을 들여 내부를 수리한 분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한 분들도 많겠지만
인간의 정욕은 한이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도 저보고 저~ 돈 없어요~ 합니다.
돈이 없다고 하니 그래요... 대답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 후
교회에서 믿음의 자매들을 볼 때
유별난 것은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은 자매들 이었습니다.
저의 집안이 불교와 유교가 혼합된 것으로
우상을 섬겼기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자매만 보면
나의 배우자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 저 자매 눈여겨보았다가
저를 인도해 주던 친한 누님께
간접적으로 선을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 누님도 여러 가지 은사를 받은 자요
윗대로부터 믿음의 계보를 가졌기에
저보다 훨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제대 후 2년간을 더
옆에서 관찰케 하다가
정작 부산에서
내 맘에 좋은 대로
내 눈에 좋은 대로 결정했습니다.
불신가정의
더하여 여름방학 때면
비구니들과도 생활하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찍었고(눈으로) 결혼했습니다.
제가 믿음에서 방황하던 시절이니
세상임금이 얼마나 저를 유혹하기 쉬웠으며
몰아감이 보위의 물과 같았을 것입니다.
저의 아내가 나오미를 따르기까지는
결혼 후 칠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고
보아스를 만나기까지는
오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습니다.
그 12년의 세월동안
저는 무수한 내 이웃의 집을 탐내게 되었습니다.
먼저 나오미를 따르기로 작정하기 전
세상임금은 부부간에 작은 문제라도 증폭시켜
결국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말들을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기 위하여
쏟았던 헌신들을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비록 당시 세상적으로 하잖은 위치며
보잘것없는 명예지만
옷을 덧입을 때 마다
주변의 환경을 들어서 유혹의 길로 몰아가려는
마귀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젊고 사교적이고 인물도 좋고
세련되고 집안에 돈도 많고...
세상에 대한 저의 욕심을
확실히 채워줄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이들이
왜 그다지도 많았던지...
수없이 많은 다툼가운데
아내에 대한 첫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추억 하고 추억하며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내가 사랑한 여자의 모습을
눈에 각인하고 마음에 각인하고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모든 것들에 각인시키려 애썼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입에서 조차도
그래! 우리 이혼하자는 말이
튀어나올까봐 두려웠습니다.
광야의 시험이 끝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잘못알고 금송아지를 만든 것 외에는
광야에서의 우상 섬김은 없었다고 봅니다.
우상으로 섬길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기에
하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섬길만한 우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하였음을 봅니다.
아내가 함께 믿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더한 시험의 때를 맞았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주변의 역사하는 모든 것들이
불신자의 테두리이다 보니
믿음이 있다하는 저에게는
결국 헛된 것이기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 이였지만
교회 내에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부터
유혹적인 시험은 더욱 심화되어갔습니다.
저가 믿음을 회복하는 순간
이전의 은사들이 불 일듯 일어남으로
활동을 왕성히 하다 보니
아내가 주님을 만난
첫사랑의 기쁨이 유지되어가던
2년여의 시간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고
예전 서울에서 다니던 교회가
새로 설립한 지교회로 옮겨가면서
많은 일들을 맡게 되었고
그로인하여 더욱 숨 가쁘다 하리만치
교회 일에 바쁘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내가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오는 불협화음이라기보다는
보폭의 차이점인 것을
알지 못했던 저는
당시 저의 발걸음을
힘차게 따라오던 지체가 더욱 친근해져 가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다시금 예전 결혼할 배우자를
물색 하던 것처럼
함께 사역에 동참할 이들을
외부에서 찾아 나섰습니다.
시키는 대로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이
찬양을 잘 하는 이
심방 가서 함께 영혼 살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이
나와 함께 성경공부하며
은혜를 나누는 것을 기뻐하는 이
함께 교회 행사들을
의논하고 추진해 가는 것에
나와 의견이 일치하고
문제 해결에 지혜가 많아 보이는 이 등등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돕는 배필로 짝지어 주신 아내를
동역자 삼지 않고
내 이웃의 집
하나님께서
다른 필요를 위하여 세우신 이들을
저는 나의 돕는 배필처럼 여겼습니다.
아내가 교회를 다니기 전에 잦았던 불화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라 만큼
모든 예배 후 귀가 차량 내에선
영적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한다하면서도
온갖 주제로 문제로 일들로 다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이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이니
무작정 탓할 수도 없고
그러니 속에 걱정 밖에 근심이
안색에 가득 하였습니다.
별의별 인간적인 생각을 다했다 합니다.
남편의 저 모습들 중에서 예수만 빼면
딱 바람피우는 것과
일반이라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의 맘속에는
교회 내에서 영적사역에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 이들이 예뻐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짝지어 주신 아내를
소홀히 하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 주변 이웃의 집들을 하나하나
따로 떨어져 나가게 하셨습니다.
결혼으로
이사로
다툼으로
거리상으로도 멀~~리 멀~~~~~~~~~리 보내버리셨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내는 하나님과 더욱 거리가 가까워져 갔고
영적인 깊이는
저를 훨 추월해 앞서가게 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의 율법과도 같은
성도의 의무에 매달려 있을 때
아내는 진정 상한 심령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으니 어느 제사를 받으셨겠습니까?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 아내의 기도와 헌신으로 인하여
저는 진정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아내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내의 말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듣습니다.
저는 욕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상한 심령을 치유키 위하여
말씀의 바다에 빠져 있었기에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해진 아내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인도하심을 알아갑니다.
그럴지라도 가끔씩은
말씀의 해석과 적용문제로 다툼이 있지만
솜방망이의 두드림이 상처가 날 수는 없습니다.
분을 낼 때도 있지만
해가 지기 전 반드시 풀기를 노력합니다.
아내의 심령이 닫히면
저의 기도가 막힘을 확실히 체험하고 알았기에
감히~~어불성설~~ 어휴~~
하나님께서
딱 맞게 짝지어주신 배필이니
그것을 알고 인정하기까지
너무 많은 세월을 낭비하지 맙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