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월요일
제목: 형제들아
야고보서 2: 1-13
요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의 모습을 버려라.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케 하시고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다.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
질문
1. 나는 어떤 외모를 취하는가?
2. 나는 가난함으로 택함 받아 믿음에 부요함을 받고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을 받은 부요함을 받은 자인데, 나의 가난함은 무엇인가?
3.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고 있는가?
4. 긍휼하게 여겨지는 사건으로 구원받은 내가 긍휼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묵상
나는 말씀 앞에 깨어 있는다는 걸, 하나님 앞에 겸손하다는 걸,,,, 주시는 말씀에 대해 ‘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면 어쩌지?’ 라는 걱정에서 오는 지극한 거짓 겸손함으로 ‘이렇게 듣는 게 맞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는 날아가는 칭찬도 내 걸로 받아들이고 뿌듯해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역시 다정한 속삭임을 느끼고 사랑이 충만하지만, 말씀 앞에 나를 비춰볼 때는 딱딱해지고 뭔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비춰서 교정해야한다는 생각, 나의 허물을 굳이 끄집어내고자 했다. 그게 말씀 앞에서 나를 성장시켜 주기도 했지만, 한편 생각하면 하나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나의 갑갑증에서 그렇게라도 하면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잘 들려주실 거라는 나만의 처방이었다. 그런 나의 편협성에서 자유로웠던 말씀이 아가서였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주시는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에 너무나 충만해지고 자신만만해지고 그 사랑에 취해 황홀했다. “그래, 바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야. 내가 사랑하는 내 신랑 예수님이야. 나 알고 있어~”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나의 확신하는 믿음을 먼저 보기보다는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먼저 보고 적용하려 하는 내 모습은 나의 치우침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보일 것 같은 생각에 잘 보이고 싶어서 취했던 나의 거짓 겸손이었던 것 같다. 오늘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먼저 들어오지만 그 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았으니~’ 그 말씀에 먼저 집중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았다. 주님이 나의 가난함을 보시고 택하사 믿음에 부요케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다. 야고보가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로서 나는 서 있다. 형제라 불리는 그 말씀에 어찌나 감사한지! 자격 없는 나를 이미 익히 아심에도 부르시고 양육시켜 주시는 주님의 사랑하심에 감격한다. 그게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내 고백이다.
나는 상대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온다. 처음 시작하는 내 태도는 같지만, 내 표현과 사랑에 대한 반응에 따라 달라진다. 교제가 이뤄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다. 그러니 억울한 사건과 상황을 만나면 내 죄를 보기는 하지만 상대에 대한 거리두기가 시작된다. 뛰어넘지 못한다.
아빠 칠순 잔치를 은혜롭게 마치고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큰 동생네가 틀어졌다. 카톡으로나 전화로는 더 마음 상할 것 같아 직접 대면하고 얘기하자고 하고 내가 내려가는 찰나, 교대 근무를 해야해서 어렵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동생 되는 시간에 내가 맞추겠다고 전하고 시간 잡아서 먼저 전화하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지금껏 전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나의 한계인 것 같다. 차라리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더 궁리를 해볼 텐데... 긍휼히 여긴다고 말과 생각으로는 하지만, 내 마음 저 밑에서는 여전히 꽁해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는 겸손함으로 내 죄를 보는 가난함에 불쌍히 여김받고 구원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하라는 최고의 계명은 지키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내 모습에 갈등이 된다. 나는 한없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에 감사하고 안심하면서도 내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원통함은 풀 수 없는 나의 속 좁음, 시험을 통해 그나마 훈련받아 성장한 모습이 이 모습이다. 감사하면서도 한편 아쉽다. 그러나 기대한다. 여전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빚어주시고 만들어가실 것이기 때문에, 나를 바라보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적용
1. 나의 거짓 겸손에서 말씀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 자유함을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2. 상대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는 외모 취함이 아니라 이웃 사랑함으로 긍휼함으로 품어질 수 있는 마음으로 훈련시켜주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감사합니다.
3, 동생네에 대해 꽁한 마음, 대면하는 만남이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풀어지고 녹아지고 용납할 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4. 아들이 어떤 모습이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수용하는 표현할 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부모 역할에 참 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