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코드, 십자가, 오 개월, 그리고 오십 년
작성자명 [정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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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29
2006/ 6/ 11
컴퓨터 코드를 뽑아 동이를 틀어
제법 튼튼한 옷장 모서리와 문 사이에
엉키게 붙잡아 매고
당겨 놓은 의자 위에 올라섰다.
코드를 목에 감았다.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조금 들어
몸의 무게를 실어봤다.
당장
목을 찢는 아픔이 섬광처럼 에여왔다.
잠시 멈췄다.
일단 내려서서 아티반을 한웅큼 삼키고
몽롱해지는 머리와
몽롱해지는 몸으로
다시 올라 서야겠다.
현관문이 열렸다.
분이 오른 동생이
의자를 걷어찼다.
코드를 잡아채 빼내어 패대기 쳤다.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각 잃은 내 몸뚱어리를
난 침대 위에 냅다 패대기 쳤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2006/ 10/ 3
내 목숨 같은 아이들이라며
온갖 지식과 온갖 교훈과 온갖 꾸중으로
들들 볶았었다.
광인 같은 아빠가 지겨워 죽겠다고
몰래 기도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교차되어
내 귓구멍을 쉴 새 없이 울려온다.
머릿속이 시커먼 안개로 뒤덮였다.
열일곱 살짜리 아이가
허드슨 인스티#53935; 에 인턴으로 가 있을 때
나는 매일 이메일을 썼고
아이는 매일 답글을 보내왔었다.
열여덟 살짜리 아이가
소르본에서 공부할 때
나는 하루에 두 차례씩 이메일을 썼고
아이는 두 차례씩 답글을 보내왔었다.
열아홉 살짜리 아이가
서울에서 공부할 때
나는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딸애에게 보낼 이메일을 생각했었다.
내 사랑과 내 우스개 소리와 내 가르침에
감복하며 커온 줄로 알았던 그 아이가
이제 치켜 뜬 눈초리로
광인 같은 아빠를 조롱한다.
그 싸늘한 비웃음이 점점 증폭되면서
내 깜깜한 머릿속을 헤집고 헝클어놨다.
아빠가 보낸 어린애 같은 문구에
키득 키득 웃고 있는 에세이 속의 아이가
죽도록 부러워서
밤과 낮과 밤을
나는 꺼억 꺼억 애통하였다.
삼 년 동안 매일처럼 주고받은 딸애와의
이메일을 보물처럼 모아뒀었다.
몸이 아플 때
읽어보고 힘을 냈었다.
쓸쓸할 때 읽어보고
뜰에 나가 환한 햇살을 한웅큼씩 움켜쥐었었다.
에세이 속에서 아이가
제 아빠의 한마디를 생각해내고
아빠가 몹시 그리운 울음을 갑자기 터뜨릴 때
내 아이는
평생토록 저를 꽁꽁 옭아맨
광인 같은 아빠에게 치를 떨고
제 엄마와 제 동생을 부추겨서
쌓이고 쌓인 증오를 터뜨리며 갑자기
자취도 없이 떠났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노래하며
대낮에도 깜깜한 어둠을 동경하며
눈 먼 소경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막 8:23-24)”
목을 매달 힘조차 고갈되어
서서히 꺼져가는
내 영혼과 내 육체의 촛불을
그저 넋 놓고 바라다보고만 있을 때
슬며시 불어든 미풍처럼
예수께서는 그렇게 찾아오셔서
다 꺼진 내 촛대에
슬며시 불을 살려주셨다.
번쩍 눈을 떴다.
불현듯
십자가 지신 예수가 떠올랐다.
골고다를 오르시며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시는
그니의 아픔이
내 손 발끝에 찌르르 밀려왔다.
단 몇 초
컴퓨터 코드에 실린 내 몸무게가
감긴 내 목을 잡아 끌어 내렸었다.
당장 찢어지는듯한 아픔이
내 목통과 내 몸통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아, 아프다
너무 아팠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그 아픔의 고통이 영혼을 깎는 듯해
몇 초를 견뎌낼 수 없었었다.
벌려진 두 손에 대못이 박힌 예수,
온몸의 무게가
못 박혀 달리신 두 손을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찢어 내린다.
이제는 온 육신을 찢는 아픔#8212;
그 참혹한 고통#8212;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께서 울부짖는 소리가
아프게
아프게 내 영혼을 파 헤집고 들어온다.
오, 예수여
십자가의 예수여
[글로 읽고 그림으로 보고 화면으로 보아온 골고다와 못 박히신 예수를 이제서야 실제로 뵈니 그 고통 하시는 모습 때문에 심장 속에서 울음이 터집니다.
오로지 그의 흘리신 피로서만 죄사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제서야 진실로 믿어지니 얼마나 부끄럽고 감사한지 울음이 저절로 터집니다. “고집쟁이 예수님 (QT 나눔, 2007/ 1/ 6)”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 8:34-35)”
주님의 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러나 단호한 소리였다.
정우석아,
너는 광인처럼 네 딸들을 구속하고
광인처럼 질책하더니
이제 그 딸들의 반란에
몸서리를 치고
그 배반에 분노하여
컴퓨터 코드에 목을 달려 하였느냐,
나는 배반한 내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의 죽음이 죽도록 안타까워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렸노라.
너는 오 개월 달아난 딸들이
그리도 서러워서
목을 매려 했느냐
나는 오십 년 떠다니는
네가 애처로워
안타까워 통곡하며
네가 돌아 오기만을 이리 기다리고 있노라.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막 9: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