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빙빙 몇 바퀴씩 몸을 돌아도..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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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29
마가복음 9:1-13
몸이 살 때 마음도 살고
몸이 죽을 때 마음도 죽는다면
그 마음은 몸의 종입니다.
몸이 살면 마음도 살지만
몸이 죽을 때 마음까지 죽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몸의 종 아닙니다.
더 이상 몸의 종 아닌 제자들
그러나 십자가에서 몸이 죽어야한다는 말씀에
자꾸만 그 마음이 몸의 종 되려합니다.
그래서 또 예수께서 말씀으로 힘을 주십니다.
마음이 죽지 않으려 말씀 붙들고 섰는 중에 있으면
그 마음,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것이니라...
말씀 붙들고 힘을 낸 제자들은
엿새 후에 예수께서 데리시고 올라가신 마음의 따로 높은 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땅에서는
예수가 천한 목수의 아들인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완전한 의로 광채가 나는 흰옷을 입고
엘리야와 모세가 저희에게 나타나 더불어 말씀하시는 예수입니다.
환상을 보고 제자가 불끈 힘이 났습니다.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좋습니다. 죽음 뒤에 오는 영광이 이런 것이라면
우리가 까짓것 이 몸을 버려 초막 셋이라도 지읍시다.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화이팅!!
육신의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또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할 것이기에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스스로 못 박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순간 또 마음에 근심의 구름이 덮였습니다.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문득 둘러보는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예수와 자기들뿐이었습니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을 볼 때까지는
산에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예수께서 경계하셨지만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을 죽음에 내어주고 나서
산에서 본 것을 말하지 않으면 과연 무엇으로 그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즉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육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저희가 예수께 묻습니다.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고 자기들 입으로 말하면서
우리 몸을 죽음에 내어 준다고 어찌 그들이 우리를 죽인단 말인가요?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으로 답하십니다.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인자에 대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는 기록은 또 어찌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죽음이 두려운 제자들이지만 말씀 앞에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무리 마음을 어둡게 하여도 제자들은 더 이상 몸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빙빙 몇 바퀴씩 몸의 길을 돌아도
결국 마음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좇아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