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통의 융단 폭격을 받고있다. 진통제로 견디기를 몇일째….진통제를 먹어도 일단 건드려진 신경의 통증은 귀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 약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거의 한두시간을 나의 온 육체와 영혼을 완전히 초토화 시킨다. 예후에 대한 걱정도, 더욱이 생명과는 아무관련이 없는 이 말하기도 생뚱맞은 통증은 그러나 일단 발발하면 어찌나 위력이 큰지 아플때는 누군가 바로 진정시켜 준다면 그에게 영혼이라도 팔아버릴 지경이다. 인간의 연약함이야 누구나 다 겸손히 인정하는 바이나 이런 별볼일없는 치통조차 인간의 존재를 좌지우지 흔들만하니 그 연약함의 크기가 참으로 서글픈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와 일면식도 없는 모든 말기암 환자, 죽음의 문턱에서 통증과 사투를 벌이는 모든이를 위하여 잠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치통과 요즘 내게 불어닥친 다른 걱정때문에 마음도 급다운되어 몇일 큐티를 못하였다. 그러다가 오늘 기도에 대한 설교를 듣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기도에 대하여 일종의 강박증, 열등감, 죄책감등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 하루에 도 여러시간을 유창하고 절절하게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나의 어눌하고도 턱도없이 부족한 시간을 드리는 기도생활이 부끄럽고 뭔가 잘못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그래서 새벽에 졸린눈을 부비며 골방에 들어가 비몽사몽 기도하다가 30분정도 기도를 마치면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가며 숙제를 다한듯한 홀가분함을 느낀적도 많다.
기도란 무엇일까? 삶이 힘들거나 너무나 마음이 동요되어 있을때는 기도가 되지 않는것이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다른사람들도 많이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전에는 기도가 되지 않을때 또 그 기간이 길어질때 나는 내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권사님이 어느날 내 얘기를 듣다가 “기도가 되지 않아 기도를 못하는 것도 기도야”라고 했다. 많은 위로가 되었었다.
오늘 그 목사님은 “인간은 누구나 기도한다” 라고 했다. 하물려 무신론자 조차도..우리의 삶은 그냥 그자체가 기도라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신 분은 아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를 포함하여 만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자 존재 자체가 하나의 기도라는 것이다. 너무 철학적인 얘기 같기는 하지만 그순간에 나는 갑자기 이해가 싹되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저의 온 존재로 당신께 기도합니다. 어차피 꿈에라도 하나님이 오로라를 뒤집어 쓰고 내게 육체로 나타나실 일은 만무하니 (행여 하나님의 이러한 현현을 사모하며 간구하는 분이 있다면 죄송하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길이 기도외에 다시 있을까 싶다.
제가 꼭 하루에 30분, 한시간 정하여 유창하게 쏟아놓는 기도를 하지 못해도...조용히 하나님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가 기도의 시간과 양과 유창함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그 말씀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제 웃음이..제 아픔이…치통가운데 누군가 육체적 아픔으로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 느끼던 한없는 연민이…저의 온 삶이 그냥 하나님에 대한 기도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