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4.16
아가 6: 1-12
제목: 내 안에 너 있고 네 안에 나 있다
요약
술람미 여인의 요청에 따라 여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함께 찾겠다고 한다. 여인은 자기 동산에서양떼를 먹이며 배합화를 꺾는 솔로몬을 발견한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고백한다. 솔로몬은 어여쁨과 고움 위엄함을 노래한다.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라고 고백한다. 궁중의 여자들도 칭찬한다. 동산 나들이로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질문
1. 공동체에 나의 어려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고 있는가? 공동체가 내게 한 요청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2. 나는 나의 사랑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잘 살피고 주목하고 있는가?
3.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나? 나의 정체성은 분명한가?
4. 내가 찾아야 할 상대, 내가 용납해야 할 상대는 누구인가?
5. 내 마음은 내 이웃을 귀한 백성으로 여기며 겸손하게 섬기는가?
느낌
공동체에 자기의 어려움을 내놓고 요청하고 도움을 받고 있는 술람미 여인, 또 여인의 요청에 함께 찾고자 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우리들 공동체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함께 삶을 내놓고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우리들 교회 공동체를 사랑한다.
우리 가정 공동체는 어떤가? 나의 어려움을 잘 내놓지 못하는 것 같다. 남편과는 말하고 있지만 아들들에게 나의 어려움을 내놓고 요청하지 못한다. 우리 가정 공동체의 나눔이 더 진지하고 풍성할 수 있도록 내가 깨어야 하는데... 나는 집에 가면 피곤함이 몰려와 잠자기가 바쁘다. 적어도 10시까지는 버텨야 하는데... 10시 전에도 나는 잘 쓰러져 잔다. 어떻게 보면,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먼저 자려고 하는데 괜찮아? ’ 하고 아들들에게 나의 어려움을 잘 요청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뭔가 아쉽다. 오늘 적용으로 아이들이 잠잘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눔을 하고 싶다.
아이들의 요청과 남편의 요청에 가능하면 머리를 숙이고 함께하며 들어주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부분은 잠을 일찍 자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리 정돈이다. 어제도 예배 끝나고 일찍 와서 청소기를 돌려달라는 남편의 요청에 대답은 했지만, 집에 돌아오니 8시가 넘었다. 남편에게 미안하다. 아들들에게도 미안하다.
어제 모임에서 든 생각, 왜 나는 남편을 좋아할까? 를 생각해보면서 내가 왜 다른 사람과 다르게 느껴질까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결론은 남편이 훌륭해서다. 남편은 참 훌륭하다. 완벽한 신랑이다. 나의 예수님이 내게 완벽한 신랑이듯, 육의 남편 역시 내게는 완전한 하나뿐인 남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죄와 악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남편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생색을 낼 수 없다. 자신의 죄를 보는 게 가장 큰 권세라고 하셨는데 내 죄가 커서 내 죄가 너무도 또렷이 잘 보인다.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주목하며 살피려고 한다. 그런데 잘 안 보인다. 자주 놓친다. 자주 못 본다. 나의 남편이 무엇이 필요한지 자주 놓친다. 나의 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자주 놓친다. 남편에게 초창기 불만이 “당신은 해주긴 해주는데 내가 정말 필요할 때는 한참 지나서 해 줘요.”였다. 남편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해주긴 해줬다. 그런데 내게 그 필요가 100일 때가 아니라 거진 잊었을 때, 그 때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들에게 내가 그렇게 해주고 있다. “엄마~ 나 ~ 먹고 싶어요” 했던 말에 귀는 기울여 듣고 있지만 한참 후에 그 음식을 만들어준다. 늘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걸 정말 먹고 싶을 때, 그 적기는 놓치지 않나 생각해본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면 정말, 필요할 때 그 때에 들어주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정체성, 내 사랑하는 예수님 안에 내가 속해 있고 내 안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예전에 몰입하며 봤던 로맨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생각난다. “내 안에 너 있다.” 그 대사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내 안에 너 있고 네 안에 나 있다’란 고백을 여기서 듣게 되다니... 새롭다. 마음 설레인다. 하나님이 연애의 달인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연애 편지라는 것, 지금 피부에 더 와닿는다. 그 말에 황홀하다.
처음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했을 때, 나는 웬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다. 입양아 같은 느낌...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사람이 엄청~ 부러웠고 웬지 나와는 격이 다르다는 생각도 들고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위축감과 자격지심이 들었다. 더구나 몇 대째 믿는 믿음의 자손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열등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 분들이 복된 자손임을 알고 축복하지만 나나 그나 같은 입양아라는 사실에 동질감이 느껴지고 나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끈끈함 두터운 끈, 친밀감에 나도 위풍당당하다. 우리 친아빠 하나님, 우리 육의 아빠가 의붓아버지임을 나는 안다. 우리 진짜 신랑 예수님, 내 육의 남편이 둘째 남편임을 나는 안다. 내 사랑~ 나의 예수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하고 오늘 내게 고백하신다. 예수님의 연인이 아무리 많아도 나와 있는 지금, 예수님에게는 오로지 나 하나뿐이다.
잃어버린 아들, 소명이는 내가 찾아야 한다. 큰 아들, 지명이는 찾았다. 그런데 아직 소명이는 못 찾았다. 항상 나의 잘못된 선택에 피해와 나쁜 영향력을 고스란히 받는 건 둘째 소명이었다. 아기 때, 시어머님이 오셔서 아이를 돌봐주시다가 내가 너무 힘들어서 놀이방에 보내게 되었을 때도 소명이는 분리불안 증상을 보였고 그런 불안함은 지금도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난다. 우리들 교회에 지명이는 잘 등록해서 다니고 있는데 소명이는 버티며 지금도 어른 예배를 고집한다. 급기야, 나의 신체 폭력!! 지난 번 오케스트라 입단도 하겠다 안 하겠다 하겠다 안 하겠다 번복하다가 결국은 입단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함이 삭아지기도 전에 청소년부 예배에 등록하라고 구슬려서 하겠다고 다짐받아서 의기양양 교회가려는 준비를 하는 주일 아침, 안 가겠다고 버텼던 아들, 머리채를 잡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던 내 언약은 뒤로 하고 분함에 겨워 유도로 공격하는 체신 안 서는 짓거리에 아들은 마음 상해서 대예배도 안 오겠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어르기는 했지만, 부끄럽고 창피하고 쪽 팔린다. 내가 찾아 나서야 할 대상, 그리고 내가 사죄받아야 할 대상은 울 아들들이다. 부모된 기쁨을 준 귀한 아들들에게 이렇게 막 대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죄스럽고, 미안할 뿐... 부모로서 더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주시고, 낮아지는 섬김의 도를 배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내가 용납해야 할 상대가 누구랴? 목사님 말씀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고 가해자이자 피해자만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상대의 입장에서 나의 죄를 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주위에는 마음에 서운함으로 얽혀 있는 상대가 있다. 그 입장에서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 라는 심정이 든다.
귀한 내 백성, 하나님의 백성.... 겸손함으로 섬겨야 할 내 직장 식구들, 가족, 친척,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적용,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이지만 내가 난척 할 수 없는 게 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잖은가? 자격 없으심에도 나를 세워주시는 주님 앞에 나는 아무 할 말 없는 인생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적용
1. 아들과 함께 잠 자는 시간을 지키고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2. 남편 오기 전까지 잘 정리하며 집안 살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3. 남편에게 '내 안에 너 있고 네 안에 나 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4 지명이 소명이를 겸손하게 잘 섬기며 특히, 소명이의 꼬여 있는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사죄하겠습니다.
5 아들들의 필요에 적기에 적시에 민감하게 반응하겠습니다.
6 겸손하게 섬겨야 할 주님이 붙여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겸손함으로 마음 표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