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되는 교회 와 자라는 교회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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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27
마가복음8장27절-38절 [교체되는 교회 와 자라는 교회] 2007/01/27
최근 들어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
교회의 역할에 대한 것을
많이 생각해 봅니다.
마침 오늘은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또한 제자들에게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응답을 찾고자 합니다.
거창하게는 말고
나의 삶 가운데서
또한 적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답을 구하려 합니다.
주님에 대하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또한 주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시지 아니한다면
세례요한은 아니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주님,
엘리야 같은 주님,
예레미야나
여러 선지자와 같은 분으로
주님을 한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우리나라에 많은 교회가 있음인데
이것을 잘못 운용함으로
도리어 화가 되는 모습들을
종종 접합니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성도가 있음으로 하여
일부가 빠져나감에 대한
무감각한 현상을 봅니다.
하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실 땐
그들 모두가
주님의 몸을 이룬 지체덩어리인데
몸이 자라감인데
저는
그것을 알지 못했음을
심히 안타까워합니다.
물론 함께 신앙생활 하던 지체가
떠나감에 대하여
맘 아파하기는 했지만
그 일에 대한
진정한 영적 문제점을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세상 친목단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정도로 치부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는데
그래서 몸 된 지체를 이룸인데
성도수가 불어남이
꼭 팔이 여러 개가 되고
손이 여러 개가 되고
발이, 눈이, 귀가, 입이
여러 개가 되는 것처럼
생각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방송국 빼고 아니, 우리들 교회는 빼고 ^^:;)
그래서 눈 하나쯤,
손 하나쯤, 발 하나쯤 정도야
잘라내어도 대수롭지 않다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좋은 교회는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그런데 목사님께서 덧붙여
바른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고 하시니
아리 송송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하시니
더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
이삭의 순종함같이
가뭄의 땅에 씨 뿌리는 한해를
살기로 하였습니다.
아직 지시하시는
땅에 대한 명하심이 없기에...
며칠 전
영남 아래 권에서
가장 크다하는 교회의
청년부 회장직을 감당하고 있는 지체가
저의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가끔씩 직분감당하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영육간의 엉킨 실타래를
풀고 가기도 합니다.
이전 청년부 기관장을 맡고 있었을 때
속해있던 지체였습니다.
함께 있었을 때는
별반 드러남이 없어서
우리들 교회 용어로는
보석이었는데
타 교회를 가서는
싹이 나고 줄기가 뻗는가 하더니
어느새 열매를 맺고
훌륭한 가지가 있는 나무가 되어
쉼터를 제공하는
오리지날 겨자씨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옮겨감은
더불어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솔직히 청년부 숫자가
천 육백 명쯤 된다하니
나의 목양숫자와
비교되려 하는 미숙함이
순간적으로 일어 났습니다.
시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그 청년을 제가 크리스챤의 용어로는
사랑함이고
일반용어로는
좋아하기 때문에
괄목상대 일취월장하는 그의 모습을 통하여
흐뭇함이 더해 갑니다.
이처럼
기분 좋은 따로 세움도 있지만
시기와 질투와 분쟁으로 인하여
서로 욕하고 헤어지고
멀리서도 계속 욕을 하는
그로 인하여
서로가 여전히 분해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해외 어떤 목사님의 설명에
이빨이 혀를 씹었다하여
혀가 이빨을 뽑아내자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못질하다 한 손이
다른 손을 망치로 내려쳤다하여
잘못 내리친 손을 잘라버리자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못 내리친
그 손의 도움을 받아
상처 난 손을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등의 일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정한 사랑으로 베드로를
호되게 꾸짖으심을 봅니다.
그래도 잘 붙어 있으니
이것이 사랑의 능력임을 알아갑니다.
집안에서 애들에게
무지막지하게 다루는 애들 엄마가
진정 자식에 대한 애정이
더함을 알겠습니다.
저는 신사적이지만
그만큼 음흉할 수도 있음을
교회 내 분쟁의 사건을 통하여
확실히 알았습니다.
애매히 많은 고난을 받는다 하였고
다른 교구장과 기관장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이
썩어 들어감같이
주님의 보혈이
서로에게 통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사랑이
서로에게 흘러감이 없다보니
그들도 저도
함께 썩어져 갔습니다.
다만 그들은
드러난 썩음이요
저는 속으로 곪아감의 차이였습니다.
오늘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은 드러났지만
바리새인들이 드러나지 않음같이
저는 다른 지체들이
눈치체지 못하는
시기와 다툼과 미움과 살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러난 부분이
도려내어 지는 것을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곪은 저는
잘려내어짐을 면했습니다.
잘려나간 부분만큼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기능적인 역할이
정지되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들이
신제품으로 교체되어지는
공산품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함께 자라가야 할
한 몸인 것을.
이제는 다른 방도가 없이
그 아픔의 진통을 겪어야 하며
잘려나간 만큼의
대신할 지체의 역량이
커져갈 때까지
뼈저리게 후회함으로
회개하며 기다려야 할 때 입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아니하도록
이 잘려나감의 사건을
부끄러워하고 감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주님과 함께 죽어짐으로
용서와 화해의 말씀에 순복하고
고난과 버려짐과 죽음의 사건을 통하여
부활한 자의 기쁨을 누리고 나누는
저가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단체 같은 특성을 띠는 곳에서
주의 몸 된 교회의 정체성을 알리고
역할을 감당하는 방법으로
오늘
고난과 버려짐과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남을 말씀하시니
이 십자가 잘 지기를
두려움과 근신하는 맘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잘 감당하도록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늘 저를 덮어 주옵소서.
감사하오며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